
“진짜를 가감 없이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잘못될 수도 있으니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잘될 수도 있어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그래서 잘됐고요. 앞으로도 한국 문화가 글로벌하게 뻗어나가고 사랑받는 길은 한국 문화를 자신감 있게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제작한 매기 강(강민지) 감독이 22일 오후 한강로2가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국내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밝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 슈퍼스타 헌트릭스 루미, 미라, 조이가 화려한 무대 뒤 세상을 지키는 숨은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담은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6월20일 공개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매기 강 감독 어릴 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강 감독은 “초등학교 2~3학년 때 선생님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봐서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라고 했다. 근데 지도에서 한국을 못 찾더라. 중국, 일본 사이에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못 찾았다. 그래서 딱 집었는데 색이 달랐다. 발전이 덜 된 세컨드 컨트리(Second Country)였다.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위상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강 감독 바람대로 전 세계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이다.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영어 영화 부문에서 한 번도 이탈하지 않으며, 넷플릭스 역대 가장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이자 두 번째로 많은 시청 수를 기록한 넷플릭스 영화가 됐다. 해외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상영회가 한창이다. 북미를 비롯해 영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열린 싱어롱 상영회는 이미 1000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다음달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진행될 예정이다.
강 감독은 작품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 “공개 후 10일 동안 저와 남편도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끝없이 봤다. 하루 종일 메시지도 받았다. 자야 하는데 새벽 두세 시까지 핸드폰을 못 놓는 거다. 그러다 보면 트위터 타임라인 글이 조금씩 한국말로 변한다. 타임 체인지가 돼서 그런 거다. 그때 이게 글로벌하게 큰 영화구나 느꼈다”고 답했다.
OST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까지 차지했다. 강 감독은 “‘골든’은 작업하기 어려운 곡”이었다고 털어놨다.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서사를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해야 하는 대표곡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고음으로 구성된 곡을 준비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강 감독은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게 음악의 힘이다. 굉장히 높은 고음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뛰고 설레지 않나. 음이 높을수록 감정이 격해지고 감동이 커진다”며 “데모를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들었는데 순간 눈물이 났다. 최종본을 들었을 때 ‘이거다’라고 느낄 것 같았는데 그 순간 그렇게 느꼈다”고 설명했다.
매기 강 감독은 넷플릭스, 소니픽처스의 전폭적인 지원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 바탕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다. 강 감독은 “넷플릭스는 한국 문화와 한국 콘텐츠가 얼마나 매력 있는지 안다. ‘오징어 게임’, ‘피지컬 100’은 제 근처에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또한 업계에서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서사를 원했다”고 밝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진짜’ K컬처를 담았다. 헌트릭스 멤버들이 즐기는 김밥, 라면, 대중탕부터 저승사자 그룹 사자보이즈, 호랑이 캐릭터 더피까지 한국적 요소를 왜곡 없이 그렸다. 이로써 국내 시청자에게는 친숙한 재미를 제공하고, 해외 시청자에게는 낯섦에서 오는 흥미를 안기는 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해, 강 감독은 “한국을 다룬 해외 콘텐츠를 보면 틀린 게 많다. ‘뮬란’도 중국 스토리인데 기모노 스타일 옷을 입고, 이런 부분이 아시안으로서 기분이 나쁘지 않나. 한국 문화를 정확하게 담아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스토리, 캐릭터가 제일 중요하다. 보편적인 스토리를 만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해를 못 해도 언젠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데몬 헌터’라는 설정도 한국 무속신앙과 연결된다. 강 감독은 “굿은 최초의 콘서트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 무당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이미 음악과 춤을 이용해서 악귀를 물리치는 문화가 있는데 연결짓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대부분 무당이 여성이지 않나. 그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당이 남성 의복을 입는 게 힘 있게 느껴졌다. 전통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진보적이면서도 페미니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매기 강 감독은 이번 기자간담회 참석에 앞서 20일 아리랑TV 토크쇼 ‘K-팝 : 더 넥스트 챕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실은 “우리나라가 소프트파워 빅5의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K팝을 비롯한 문화산업의 지속적 성장과 혁신이 필요한 만큼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전해진 현장의 목소리와 통찰을 앞으로의 정책 방향 설정에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알린 바 있다. 이에 강 감독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한국계) 글로벌 크리에이터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인종, 성별, 나이를 뛰어넘은 인기 비결로는 ‘공감’을 꼽았다. 매기 강 감독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모든 캐릭터에 진심으로 공감이 가능하다. 그게 영화의 아름다움이다.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최상 예술의 형태인 것”이라며 “어디를 가도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수치심을 느끼는 지점이 있다. 어린아이도 공감할 수 있다. 6살 시청자도 루미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정확히 이해한다고 하더라”고 자부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스카(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매기 강 감독은 “모든 창작자가 그런 이유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어떤 것이든 어떤 형태로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특히 영화업계에서 인정받게 된다면 대단한 영광일 것 같다”고 얘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