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낭만에 15만명 흠뻑…무더위 속 별천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쿡리뷰]

우중 낭만에 15만명 흠뻑…무더위 속 별천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쿡리뷰]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주년
폭우 속 헤드라이너 벡 공연 이어져
호평·혹평 사이 미흡한 운영 지적도

헤드라이너 벡이 3일 인천 송도동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무대를 펼치고 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제공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고, 예고된 폭우 영향인지 옷은 몸에 쩍쩍 들러붙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밝은 표정에 기력이 넘쳐 보였다. 곳곳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끼리 노래에 맞춰 몸을 맞대거나 부딪혔다. 불쾌한 기색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실시간으로 체감하는 무더위를 믿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3일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이 열린 인천 송도동 송도달빛축제공원 일대는 그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참 아름다운 밤이네요.”

올해 20주년을 맞은 펜타포트의 마지막 밤은 아름다웠다. 9년 만에 한국을 찾은 헤드라이너 벡(BECK)의 표현이다. 이날 벡은 얼터너티브 록의 제왕답게 비가 쏟아지는 스테이지를 군림했다. 슈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셔츠는 가슴께까지 풀어 헤친 그는 자신의 옷차림 같은 무대를 펼쳤다. 음원을 재생한 듯한 완벽한 라이브에 자유분방하지만 각 잡힌 춤사위가 더해졌다. 

관객들은 열광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첫 번째 곡 ‘데빌스 헤어커트’(Devils Haircut)부터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벡은 매 무대 화려한 발재간과 무릎을 아끼지 않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관록의 해외 아티스트답게 무대 스크린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진짜 시작은 비가 쏟아지고부터였다. 벡이 ‘와우’(WOW)를 부를 때쯤이었을까. 방금 워터캐논이 가동됐는데 물방울이 다시 피부에 닿았다. 빗방울임을 알아차리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황한 것도 잠시, 어디선가 “오히려 좋아”라는 말이 들려왔다. 다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모두 기다렸다는 듯 귀갓길은 물론, 내일을 잊은 것처럼 더 격하게 뛰어놀았다.

‘드림스’(DREAMS), ‘루저’(LOSER), ‘웨어 잇츠 앳’(WHERE IT’S AT) 무대에서는 떼창이 터져 나왔다. 폭우는 결코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망칠 수 없었다. 무대를 정돈하는 찰나에는 공연 중단을 예상했지만, 벡은 그칠 줄 몰랐다. 그 아티스트에 그 관객이었다. 한낮에 땀으로 샤워했던 관객들은 우중 록페의 낭만에 다시 흠뻑 젖었다.

1~3일 인천 송도동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입장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제공

문제없다는데 입장부터 문제

그간 국내 록 위상 변화를 생각하면 더욱 뜻깊은 20주년 공연이었지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 있었다. 그중 하나는 급작스러운 라인업 변경이었다. 2일에는 비바두비(BEABADOOBEE) 대신 글렌체크가, 3일에는 데프헤븐(DEAFHEAVEN) 대신 이승윤이 무대에 올랐다. 서브 헤드라이너의 공연 불가 통보는 대체 아티스트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기대에 부풀었던 이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미흡해 보이는 운영이 가장 많은 질타를 받았다. 이틀 차인 토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 입장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침부터 길게 이어진 줄에 일부는 송도달빛축제공원역이 아닌 국제업무지구역에서 합류하기도 했다. 기자의 관련 문의를 받은 한 관리자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서 어쩔 수 없으며, 운영상 문제는 전혀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입장 게이트부터 소지품 검사소까지 거리가 상당한데, 관객들 동선을 정리할 벨트 차단봉도 스태프도 없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준비가 미비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3일 내내 공연장을 찾은 조정묵(27·남) 씨는 첫날 입장에만 2시간30분을 소요했다. 평소 중소 페스티벌을 주로 찾았다는 그는 “이렇게 줄 관리를 못하는 페스티벌은 처음이었다”며 “입장객들이 도로를 채우면서 줄을 서 있고, 건널목 신호등 불이 바뀌는 순간 사람들이 새치기하는데, 이를 통제할 스태프가 없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티켓 권종이나 재입장 여부와 상관없이 같은 줄을 서야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꼬집었다.

밴드 자우림이 3일 인천 송도동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무대를 펼치고 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제공
1~3일 인천 송도동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제공

“록 하면 불로장생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록에 진심인 관객들과 가수들이 기어코 의미를 불어넣은 20돌이었다.

올해도 무대 사이드는 ‘중꺾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아 나도 락(록)스타 할걸’, ‘石(석)사도 락(록)이다’, ‘(내향인)’, ‘일단 춤추시오’ 등 참신한 문구가 적힌 깃발들로 만원이었다. 

두 번째로 큰 무대인 인천 스테이지 앞에서 만난 장유선(24·여) 씨도 ‘얘들아 베이스가 할 말 있대’ 깃발을 든 기수였다. 이날 공연 포문을 연 극동아시아타이거즈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봐서 정말 행복하다”며 “펜타포트가 있어야 여름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펜타포트에 오면서 여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장 씨는 더운 날씨에 무거운 깃발을 들고 흔들어야 하지만, 기수로 참여하면 훨씬 재밌다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제 넘치는 에너지를 깃발로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깃발을 보고 웃어 주시거나, 사진을 찍어 가실 때 정말 즐겁다”고 전했다.

벡에 앞서 메인 스테이지를 호령한 자우림은 펜타포트 20주년을 거듭 축하했다. 올해로 28주년을 맞이한 이들은 펜타포트보다 8살이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잊지 않았다. 프런트맨 김윤아는 ‘록을 하면 안 늙는다’는 밈(Meme)을 빌려 “늙지 않아야 록을 할 수 있다. 다 같이 늙지 말고 계속 록 하고 살자”고 외쳤다. 이어 “인생은 한 번뿐, 후회하지 마요”라는 히트곡 ‘매직 카펫 라이드’의 한 소절을 말하듯 부르자, 지친 관객들마저 지축이 울리는 함성으로 응답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쿠키뉴스 헤드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