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의 관세 협상 시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바통을 넘겨받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협상을 주도하게 됐다. 대선 당시 ‘제약·바이오 강국’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 이 대통령이 어떤 협상 카드를 내밀지에 따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운명도 결정될 전망이다.
1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오는 15일부터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줄라이 패키지’ 관세 관련 논의를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미 양국은 지난 4월24일 한미 ‘2+2’ 고위급 통상협의를 계기로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8일까지 이른바 ‘줄라이 패키지’를 도출하기로 했다. 협상 시한을 넘기면 한국 정부는 자동차(25%), 철강·알루미늄(50%) 등 관세에 더해 상호관세(25%)까지 부과될 전망이다. 시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만큼, 이 정부는 빠르게 협상 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협상 테이블에는 의약품 관세 관련 내용도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초 특정 수입 의약품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개시했다. 이를 두고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의약품에 관세가 매겨지면 제약업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세 여파는 이미 수출 지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세율이 25% 인상된 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지난달 32% 급감했다. 수출 효자 품목에 대폭 인상된 관세가 적용되자, 전체 수출액도 8.1% 감소했다.
관세 부과가 확정되지 않은 의약품의 경우 올해 1분기 수출액이 17.7% 증가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따라 감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의약품 수출액은 지난 2023년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4600억원)에서 지난해 15억 달러(약 2조2000억원)로 크게 늘었다. 한국의 전체 의약품 수출에서 미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기준 18%에 달한다.
미국에 완제의약품을 수출하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GC녹십자, SK팜테코 등이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한국 의약품을 수입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에 제출한 바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협력을 통해 미국 기업과 힘을 모으면서 미국 환자들이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어 바이오의약품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GC녹십자는 미국 법인을 통해 “자사 제품과 같이 미국 희귀질환자 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혈장)원료를 한국으로 수출하고, 한국에서 완제품으로 제조해 다시 미국으로 수입하는 경우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협상 속도를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권이 바뀌었으니 논의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도 될 것 같다”며 “한국도 위탁개발생산(CDMO)이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관련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이 크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천천히 협상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