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묵직하게 찍고 싶었어요. 오락영화였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 거예요.”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단순 흥행과 타협할 수 없었던 우민호 감독의 진심이다.
영화 ‘하얼빈’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우민호 감독은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안중근 자서전을 우연히 봤는데 (안중근이) 당시 30세였던 건 몰랐던 사실이었다”며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건만 알았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고난스러웠더라고요. 고뇌도 많이 보였고. 그럼에도 계속 한 게 흥미로웠어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한다’는 그분의 말씀이 개인적인 삶으로서도 확 와닿더라고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현빈)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척결하기까지 독립투사들의 고군분투를 담았다.
초기 단계 순수 오락영화였던 ‘하얼빈’은 우 감독을 만나 장엄한 역사 영화로 탈바꿈했다. “처음에는 감당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제작사의 제안을 거절했죠. 그런데 뭔가 끓어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감독을 구했냐고 물었더니, 아직 못 구했대요. 그럴 줄 알았죠. 어떤 감독이 선뜻 나설 수 있겠어요. 근데 저는 안중근 자서전을 보고선 오락영화로 찍을 수 없겠더라고요. 여기에 동의하면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시작했죠.”
‘남산의 부장들’, ‘마약왕’,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등 줄곧 근현대사를 다뤄온 우 감독이지만, 역사 속 위인의 이야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영화화하기) 더 힘들어요. 이분들은 진심이잖아요. 왜곡돼선 안 되니까요. 그분들의 고뇌, 두려움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연민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숭고함이 없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떨어져서 바라보는 방식을 취했어요.”
그렇다고 ‘하얼빈’이 사실로만 구성된 작품은 아니다.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이창섭(이동욱) 등 가상인물을 추가해 우 감독만의 표현을 담았다. “역사 그대로 하는 건 감독으로서 큰 의미가 없다고 봤죠. 하얼빈 거사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없는 걸로 아는데, 분명히 조명받지 못했지만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여성 독립군을 공부인으로 상징화했어요. 이창섭도 비슷한 인물이 있었는데 각색한 거고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뒷받침됐다고 생각해요.”
특별출연한 정우성의 캐릭터 역시 실존인물이 아니다. 최근 그의 사생활 이슈로 인해 캐스팅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우 감독은 한 신을 위해 고된 스케줄을 소화해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한 장면을 위해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와야 했어요. 그 고난스러운 여정을 견뎌낼 배우가 없었어요. 정우성 씨는 이 대본의 의미를 알고 기꺼이 하겠다고 해준 거예요.”
‘하얼빈’은 화려한 출연진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영상미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ARRI ALEXA 65 카메라로 전 시퀀스를 촬영해, IMAX에 최적화된 영상비로 제작됐다. “광활한 대지를 웅장하게 담으려고 했어요. 그 위에 선 독립군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던 거죠.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땅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약해 보이고, 그렇지만 그 여정이 숭고해 보이는. 스펙타클하게 찍었어요.”
‘하얼빈’은 독립투사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우리는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는 공교롭게도 최근 비상계엄사태로 인해 불안한 정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엄령 직후) 뉴스 화면이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울컥했어요. 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낸 시민들이 2024년의 영웅이죠. 이번뿐만 아니라 나중에 힘든 순간이 오면 다시 이 영화를 보셨으면 합니다. 그분들이 지금의 밑거름이 돼서 우리가 살아가듯, 우리도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단단해지면 무너지지 않는 거죠,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