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분리 성공해 자립하고 싶어요” 독립제약청년들의 바람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⑨]

“세대분리 성공해 자립하고 싶어요” 독립제약청년들의 바람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⑨]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인정. 나라에서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 같다.” 신이준(가명·33·남)

“하나의 세대. 한 명의 성인으로서 인정받고, 자기결정권을 갖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정윤호(가명·30·남)

“해방. 부모님을 피해 숨어 살지 않고, 눌러쓰는 모자 없이 돌아다니고 싶다.” 최지혜(25·여)

“도약. 대학원에 가고 싶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탈가정 청소년, 청년들을 연구해 돕는 게 꿈이다.” 권미희(가명·23·여) 

“행복. 내 꿈은 산타클로스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 많이 베풀고 싶다.” 윤대윤(29·남)

쿠키뉴스 취재팀이 지난 8월21일부터 10월31일까지 2개월간 만난 ‘독립 제약 청년’들은 세대분리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독립 제약 청년’은 만 30세 미만 청년의 세대분리를 허용하지 않는 기초생활보장법(이하 세대분리법)에 가로막혀 서류상 독립에 실패한 이들을 말한다. 부모의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진학·취업을 위한 상경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났지만, 20대라는 이유로 각종 복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최지혜(25·여)씨가 지난달 15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대분리 신청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사진=최은희 기자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떠나온 탈가정 청년들의 모임 ‘궤도이탈’을 운영하는 282북스 강미선 대표는 세대분리법 개정을 ‘물마중’에 빗댔다. 물마중은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나오면, 물밖에서 이들의 짐을 들어주고 끌어올려주는 일을 뜻한다. 세대분리법 개정이 이들의 건강한 자립을 돕는 첫걸음이라는 의미다. 

강 대표는 “물속에서 지친 상태로 나온 해녀들에게 물마중이 없다면, 결코 물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우리 청년들도 마찬가지”라며 “지지대를 스스로 찾아, 다음 단계를 밟으려고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우리 사회가 해줄 수 있는 건 물마중의 역할이다. 청년들이 현재 위기를 극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사회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노력은 헌법 제34조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결정문을 통해 “기초생활보장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구체화한 공공부조 제도다. 공적 지원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축소할 목적으로 가족주의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20대 청년도 개별가구로 인정해 성인으로서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고 짚었다.

20대 청년들의 독립 족쇄가 된 세대분리 개정과 함께 ‘가구단위 복지 제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따로 거주해도 가족 구성원 중 소득이 있으면 지원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게 복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가원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20대 청년이 왜 이렇게 차별받았는지를 살펴보면, 결국 근본적 원인은 부양의무자 기준과 맞닿아있다”며 “가구단위 중심의 복지 체계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한 덩어리로 묶여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선 가구단위 중심의 복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집을 떠난 20대의 자립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선 더 힘들다. 부모의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가출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난 청년들에게 국가는 법적 자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을 독립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은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냈다.

쿠키뉴스 취재팀은 8월21일부터 10월31일까지 2개월간 30세 미만의 ‘독립 제약 청년’들을 직접 만났다. 빈곤 상태여도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다. 큰 빚을 지거나, 노숙을 택한 청년도 있다. 세대분리법으로 복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 20대 청년의 삶을 조명하는 최초의 시도다. 11월4일부터 9편에 걸쳐 보도한다. *‘독립 제약 청년’이라는 언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편집자주]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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