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만원 선결제했더니 폐업”…필라테스 먹튀 피해자들의 분노

“36만원 선결제했더니 폐업”…필라테스 먹튀 피해자들의 분노

-필라테스 먹튀 피해 매년 증가 추세
-업체 대표가 파산하면 환불받을 수 없어
-피해자 구제할 수 있는 관련 제도 미비


필라테스 먹튀 피해가 발생한 업체 내부 모습. 사진=이유림 기자

필라테스 업체가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한 뒤 환불을 해주지 않는 이른바 ‘먹튀’가 증가하고 있다. 폐업을 한 업체가 파산 신청을 하면 피해자가 환불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피해자를 구제해 줄 수 있는 관련 제도도 미비해 논란이다.

지난달 27일 만난 A씨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A씨는 경기 수원시에 있는 한 필라테스 업체를 3개월간 이용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이기도 했던 이 필라테스 업체는 경기 침체로 인해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며 지난 6월 갑자기 폐업했다. 업체는 소비자들에게 수강료는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A씨는 돈을 받지 못했다. 해당 필라테스 업체와 같은 브랜드에 가맹되어있는 업체들도 줄지어 폐업하면서 피해자 수는 260명가량이 됐다.

A씨는 “필라테스 업체가 수업비 28만원을 먼저 지불한 뒤 수업을 듣고 SNS에 후기를 올리면 돈을 환불해 주는 ’0원 필라테스’라는 이벤트로 소비자를 현혹했다”고 밝혔다. 그는 “0원 필라테스가 끝나자 강사가 추가 등록을 권유하길래 32회 수업에 36만원을 추가 결제했더니 업체가 갑자기 폐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업체 대표가 돈을 환불해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파산 신청을 해버렸다”며 “파산 신청을 해놓고 필라테스 협회 강사로 일하고 있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필라테스 먹튀 피해는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실제 최근 3년간 필라테스 관련 피해 구제 신청은 2021년 662건에서 2023년 1021건으로 27% 증가했다.

필라테스 업체 폐업 소식을 알린 문자 사진.사진=A씨, B씨 제공

대표가 파산 신청하면 환불 불가능

필라테스 먹튀 폐업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소비자는 환불받을 길이 없다. 현행법상 업체 대표가 파산 신청을 해 확정되면 환불해 줄 의무가 사라져서다. A씨가 다녔던 필라테스 업체 대표도 피해자들에게 돈을 환불해 주지 않고 파산 신청을 한 상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가 스스로 소송을 걸어서 대응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답했다.

먹튀 피해자들은 변호사를 통해 필라테스 업체 대표를 고소하려 하지만 포기한다. 고소 시에 드는 돈과 시간 때문이다. 서울의 모 필라테스 업체에서 먹튀로 36만원 피해를 본 B씨는 “변호사를 통해 고소를 하려고 했는데 200~300만원이 들더라”며 “피해 금액은 36만원인데 선임비가 더 비싸기도 하고 직장인이라 변호사를 찾아갈 시간이 없어 직접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 고소장을 썼다”고 토로했다.

먹튀 피해자들은 지급명령 신청을 고려하기도 한다. 직접 고소장을 써서 고소하는 것도, 변호사를 통해 고소를 하는 것도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지급명령 신청은 채무자의 별도 심문 없이 채권자의 서류를 바탕으로 재판이 진행돼 재판이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지급명령 신청을 하려면 폐업한 업체의 실거주지를 알아야 하고 지급명령이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2주 안에 이의제기를 하면 무효가 될 수 있어 피해자들은 포기하게 된다.

▲ 이거 사기아닌가요? 돈 끌어모으고 잠적하는 업체들 [이슈 인사이드] 제작=정혜미PD

법 개정 위한 국회 움직임 적어

필라테스 먹튀가 만연한 이유 중 하나로 ‘선결제 문화’를 들 수 있다. 필라테스의 경우 수십만원, 크게는 수백만원을 먼저 결제한 뒤 수업을 듣는 식으로 운영된다. 또 필라테스 업체 측에서는 소비자가 큰 금액을 선결제할수록 더 많이 할인해 주는 등 이벤트를 해 소비자들이 처음부터 큰 금액을 결제하도록 유도한다.
소비자들이 필라테스 먹튀 피해를 당해도 보상받기 쉽지 않다. 필라테스가 체육시설업에 포함되지 않아서다. 체육시설업이란 영리를 목적으로 체육시설을 설치·경영하거나 체육시설을 이용한 교습행위를 제공하는 업(業)을 뜻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왜 필라테스가 체육시설업에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 물었으나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법률사무소Y 연취현 변호사는 “스키장 같은 체육시설업은 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있어 소비자 피해 발생 시 구제가 가능하다”며 “필라테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몇 년 전부터 필라테스 먹튀 피해자들이 증가하고 있고 실제 소송까지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필라테스 업체에서 근무했던 C씨 역시 “필라테스 업체 대표가 파산해 버리면 돈을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국가가 피해자들을 도와주지도 않는 상황”이라며 “소비자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먹튀하는 필라테스 업체가 증가하자 국회에서도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과는 없다. 지난해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필라테스를 신고 체육시설업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발의했다. 3개월 이상 이용료를 미리 지불받은 체육시설업자에게 영업 중단 시 이용자 피해를 배상하는 보증보험 가입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됐지만, 21대 국회에서 상임위 계류로 끝났다.


이유림 기자
reason@kukinews.com
이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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