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학교 딥페이크 피해자 나왔대” 얼굴 지우는 아이들 [놀이터통신]

“옆 학교 딥페이크 피해자 나왔대” 얼굴 지우는 아이들 [놀이터통신]

학생학·부모 불안감 커져...“지속적인 성범죄 미해결의 결과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딥페이크 범죄가 성행하고 있는 모습.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물 등을 제작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엄마, 친구 언니가 딥페이크 피해자래. 오늘 학교도 안 갔데.”


중학교 학교 수업이 이제 막 끝난 늦은 오후. 평소라면 연락이 없었을 그 시간, 공포에 질린 듯한 아이의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습니다. “딥페이크 사태를 아느냐”고 말문을 연 아이는 학교 친구, 학원 친구 너나없이 SNS발 딥페이크 공포에 떨고 있다고 주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가짜 합성물, 딥페이크 성범죄가 학생들 사이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자가 직접 소셜네트워크 X(구 트위터)를 통해 텔레그램 성착취 방에 잠입하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해당 ‘지능방’(지인 능욕방)에는 1500여명이 참가 중이었습니다. 정부와 경찰, 교육당국이 강력 대응에 나선 상황인데도 지인방, 겹(겹치는) 지인방, 지역 능욕방 등 각종 성착취 공간은은 이를 비웃듯 여전히 온라인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인들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한 후 온라인 채팅방에 공유합니다. 또 누군가 지인의 사진을 올려 딥페이크 사진을 요청합니다. 이를 전달받아 게시하는 식으로 운영됩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지인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휴대전화, 학교, SNS 주소 등 적어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을 요청합니다. 피해자 가족 SNS 주소까지도 공개합니다. 

딥페이크 확산 사태로 학교 현장은 뒤숭숭합니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이나 텔레그램을 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 10대 청소년들의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25일까지 디지털성범죄자피해자지원센터로부터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36.9%는 10대 이하 미성년자입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실제 공유된 합성물을 본 적이 있거나 친구가 피해를 보았다는 학생들의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중학생 이모양은 “SNS를 하는 친구들은 최근 SNS를 해킹하려는 시도를 경험했다며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며 “옆 학교 친구가 딥페이크 피해자인데 범인이 친구라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중학생 김모양은 “텔레그램 채팅방에 들어갔다가 3~4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 딥페이크 사진도 있어서 충격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초등생 박모양도 “친구가 텔레그램 채팅방을 보여줘서 봤다가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쉽게 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SNS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공개됐던 사진을 비공개로 돌리고 얼굴이 나온 사진을 삭제하거나 계정 자체를 없애고 있습니다. 일부 학부모들도 ‘SNS 이용이 문제’라며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가해자들보다 피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아이들이 위축되고 두려움에 떠는 상황입니다. 박양은 “길거리를 걷다가 누군가 내 얼굴 사진을 몰래 찍어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무서울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지는데 반해 단속이나 처벌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 합성물을 배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을 명문화했습니다. 그러나 해외서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려운데다 법정에 세워도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칩니다. 특히 딥페이크 음란물은 내려받거나 시청하는 행위를 처벌할 근거 조항도 없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 합성물 제작한 사람에 대해서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합니다. 

교사단체는 딥페이크 사태와 관련해 “지속적인 성범죄 미해결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는 28일 성명을 내고 “가해자에게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피해자에게는 지켜주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사회가 방조한 결과가 지금과 같은 불법 합성물 성범죄 사태를 만들었다”면서 학교 전수조사와 피해자 보호·지원책을 촉구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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