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 미혼모 외면 여전...양육 우려에도 지원 전무 [엄마의 탄생⑤]

‘경계선 지능’ 미혼모 외면 여전...양육 우려에도 지원 전무 [엄마의 탄생⑤]

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360조원을 투입해 줄기차게 저출생 대책을 마련해 왔음에도 출산율은 오르긴커녕 바닥을 모른 채 추락 중이다. 그럼에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들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고 칭송받는 시대임에도, 축하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기 임신’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예비 한부모들은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한다. 오는 19일 보호출산제 시행을 앞두고 미혼모(비혼모)들의 삶을 조명해 우리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아이 좀 키워주세요.” 추운 한겨울, 얇은 원피스만 입은 한 여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던 한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행인의 도움으로 미혼모시설에 들어가게 된 경계선 지능인 비혼 엄마는 여전히 양육이 버겁다고 한다. 그런 그도 시설에서 탈출하는 게 꿈이다. 시설 관계자들은 시설을 떠나 지역사회에서 살아나갈 엄마와 아이만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시설 양육 외엔 마땅히 해줄 수 있는 도움이 없다.

13일 미혼모시설, 관련 단체 등에 따르면 최근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는 비혼 엄마가 늘고 있는 추세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70~85인 사람을 뜻한다. 낮은 인지 능력으로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지적장애(IQ 70 이하)에는 해당하지 않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경계선 지능인 비혼 엄마도 적절한 지원과 주변 관심만 제공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생활고,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이 높으면 양육 환경이 좋지 못할 확률이 높다. 좋지 않은 양육 환경, 부족한 돌봄 능력은 자녀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경계선 지능인 비혼 엄마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경계선 지능인 비혼 엄마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이들을 지원하는 법률, 복지 서비스는 전무한 상황이다.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 경계선 지능 검사를 하는 데 반해, 더 많은 수의 지역사회 거주 비혼 엄마는 스스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경계선 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웩슬러 지능검사나 풀배터리 검사는 비용만 30~50만원에 달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양육 미혼모 가정이라면 검사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검사가 진행되는 약 4시간 동안 아이 돌봄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고민이다.

원가정과 단절돼 있거나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등 고립된 비혼 엄마라면 발굴이 더 어렵다. 엄마와 아동의 안전을 위해 경계선 지능인 비혼 엄마를 발굴하는 것이 시급한데도 현황 파악부터 놓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지자체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와 그 자녀에 대한 지원체계를 가동했다. 사진은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

비혼 엄마를 대상으로 경계선 지능 검사 비용을 지원하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유미숙 사무국장은 “엄마들을 만나면 꾸준히 관찰하고, 이해되지 않는 반복적인 행동을 발견하면 검사를 권유한다. 의심돼 검사하면 100%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학습하는 능력을 갖췄다.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양육을 하면 그 패턴이 그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며 “시설 입소 조건으로 경계선 지능 검사를 하는데 거기에 그친다. 비혼 엄마가 시설에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나오는데 이들이 사회에 나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대한 것이 없다”고 우려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도 “겉으로는 문제가 전혀 없는 비혼 엄마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엄마와 조금 다른 사람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인지, 대처 능력이 좋아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떨어진다”며 “한 명도 돌봄이 힘든데 아이를 3~4명까지 출산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법 제정과 예산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현재 지자체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와 그 자녀에 대한 지원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유 사무국장은 “정책은 경계선 지능인 비혼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 들어가야 한다”며 “경계선 지능 범위를 넓게 잡고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 지원할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혼 엄마가 한부모 지원 신청을 할 때, 지원 조건으로 경계선 지능 검사를 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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