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집단실종, 주범은 ‘사양벌꿀’?…대통령실도 주목했다 [꿀 없는 꿀벌]

꿀벌 집단실종, 주범은 ‘사양벌꿀’?…대통령실도 주목했다 [꿀 없는 꿀벌]

해외선 설탕꿀인데…한국만 식품 인정하는 ‘사양벌꿀’
농식품부 “양봉산업 발전한다면, 사양꿀 폐지 검토도 가능”
홍문표 의원 “대통령실, 사양벌꿀·밀원수 문제에 관심 보여”

사진=박효상 기자

벌들에게 설탕을 먹여 채밀한 ‘사양벌꿀’ 생산이 꿀벌 집단실종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설탕물 급여가 꿀벌의 면역력 저하와 수명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대통령실도 관심을 보인 만큼, 대책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밀원 부족 해결을 위한 꿀벌목장 제도화’ 토론회가 24일 개최됐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쿠키뉴스가 주관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사양벌꿀 생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양벌꿀을 식품으로 인정하면서 꿀벌의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다. 사양벌꿀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벌에게 설탕을 먹여 만든 꿀을 말한다. 제품으로 유통할 땐 ‘꿀벌이 설탕을 먹고 저장해 생산한 꿀’이라는 문구를 12포인트 크기 글자로 명시해야 한다. 사양벌꿀은 천연벌꿀과 달리 건강 보조 효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소비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표기를 의무화했다.

기조 발제에 나선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지난 2020년 발생한 ‘월동벌 대량실종 사태’는 벌에게 설탕물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사양벌꿀 생산을 장려하는 국내 양봉정책에서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사양벌꿀을 합법화한 양봉정책으로 인해 늦가을까지 사양벌꿀 생산에 꿀벌이 동원되곤 한다”며 “꿀벌에게 사양벌꿀 생산을 강요하거나 월동식량을 만들도록 늦가을까지 설탕물을 계속 공급할 경우 영양 부족과 과로로 꿀벌의 수명은 크게 단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양벌꿀 생산량은 식품으로 인정된 다음해인 2021년부터 급증했다. 식품 및 식품첨가물 생산실적(2018~2022)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8월 양봉산업육성지원법이 시행되기 전 사양벌꿀 생산량은 △2018년 238톤 △2019년 233톤 △2020년 301톤에 불과했다. 그러나 생산이 합법화된 뒤 △2021년엔 6852톤으로 전년 대비 무려 2176%나 늘어났다. 2022년에도 3655톤이나 생산됐다.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 사진=박효상 기자

송 이사장은 꿀벌 생존을 위해선 사양벌꿀 명칭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시장에서 유통 가능한 벌꿀을 국제 식품규격과 똑같이 천연벌꿀로 한정하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사양벌꿀은 벌꿀 대용식품으로 간주해 벌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사양벌꿀 생산으로 인해 꿀벌들의 수명이 단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한상미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장은 “벌들은 밀원식물의 화밀과 화분에서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한다. 그런데 설탕물엔 그런 필수 영양분이 없다”면서 “오렌지 밭 주변에 사는 꿀벌들이 대량 폐사했다는 보고가 있다. 단일 영양분만 먹으면 생명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추론해봤을 때 꿀벌이 설탕물을 먹으면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과학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사양벌꿀을 식품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해외에선 해당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한 과장은 “사양벌꿀의 명칭은 벌꿀이지만, 과학적 정의로는 벌꿀이라고 볼 수 없다”며 “설탕물 급여가 꿀벌에 피해를 준다는 연구 결과가 없는 건, 우리나라만 사양벌꿀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연구가 없는 게 꿀벌 생존에 영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양봉업계는 사양벌꿀 유통을 금지해야 천연벌꿀 시장의 위축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한결 자연꿀 동호회 회장은 “일본에선 사양벌꿀이라는 명칭 자체가 없고, 오직 순수벌꿀과 가당벌꿀로만 구분된다. 가당벌꿀은 큼직하게 라벨에 표시하고, 순수벌꿀의 10분의 1 가격으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처럼 개선해야 천연벌꿀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박근호 한국양봉협회 회장은 “양봉인들도 원재료와 인건비가 들어가는 사양벌꿀 생산을 원해서 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국토 면적이 적고, 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밀원이 확보돼야 천연꿀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24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밀원 부족 해결을 위한 꿀벌목장 제도화’ 토론회가 개최됐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쿠키뉴스가 주관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주무부처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설탕꿀’이라는 명칭으로 유통될 경우 사양벌꿀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연섭 농식품부 축산경영과장은 “설탕꿀로 명칭을 변경했을 때 판매가 될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며 “1년 내내  채밀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꿀벌에게 설탕을 먹일 수밖에 없다. 농가에서도 어느 정도 소득을 얻어야 업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양봉산업에 필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라면 명칭 문제가 아니라 폐지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혜정 식약처 식품기준과 보건연구관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사양벌꿀 제도화를 통해 소비자가 정확하게 알고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식품 유형을 신설하게 됐다”며 “사양벌꿀 기준은 농식품부와 공공단체, 소비자단체 등과 오랜시간 협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봉산업의 전반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해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도 해당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문표 의원은 “오늘 대통령실 오찬에 동석했던 성태윤 정책실장이 국내 밀원수와 사양벌꿀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며 대안 마련에 의지를 내비쳤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은빈·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최은희 기자, 김은빈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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