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소재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 강(32)씨는 최근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는 걸 자제하고 있다. 그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퇴근 후 회식을 하는 게 삶의 낙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횟수를 줄이고 있다. 신년이 된 만큼 다이어트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최근 비싸진 술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재작년(2022년)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소주나 맥주가 1병에 3~4000원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보면 4000원이면 싼 편이고, 5000원이 평균 정도인 듯해요. 비싸면 1병에 6~7000원인 곳도 있더라고요. 비싸다고 느껴지니 자연스럽게 주류 대신에 콜라나 사이다 같은 음료를 마시는 것 같아요.”
2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 맥주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6으로 전년보다 6.9% 상승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9.7%) 이후 25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같은 기간 일반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 맥주 물가는 2.4% 오르는 데 그쳤다. 외식용 맥주의 물가 상승률이 가공식품 맥주 물가 상승률의 2.9배에 달한 것.
소주 역시 외식 물가가 가공식품 물가의 2.8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외식 소주 물가 상승률은 7.3%로 일반 가공식품 소주 물가 상승률(2.6%)의 세 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외식 소주 물가 상승률은 2016년(11.7%)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새해 들어 소주를 포함한 국산 증류주에 붙는 세금을 줄이는 기준판매비율 도입키로 했다. 기준판매비율은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을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뜻한다. 일종의 할인율로, 원가에서 기준판매비율 분만큼 액수를 뺀 나머지가 과세표준이 된다.
유통업계들은 정부의 방침에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12월 참이슬·진로 출고 가격을 10.6% 내렸고 롯데칠성음료도 처음처럼·새로 출고가격을 각각 4.5%, 2.7% 인하했다. 이외에도 국순당, 보해양조 등도 소주 및 증류주 등의 가격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연초부터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소주 가격은 최대 10% 내려갔다.
주류업계 출고가 인하로 외식업체 납품가가 낮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사실상 식당 등에서 현장 반영이 되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은 가격 인하 체감을 전혀 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와 같은 이유로는 식당 등지에선 주류 가격 외에 인건비·임대료 등 비중과 압박이 커 사실상 단일 주류 가격만 낮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매출에서 주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가격을 섣불리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식당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경기도 수원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57)씨는 “코로나19 이후 물가가 상당히 올랐다. 인건비를 포함해 다른 식재료도 상당히 상승한데다, 건물 임대료도 많이 올랐다”면서 “이렇다보니 음식 가격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주류 가격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강(42)씨는 주류 도매 과정에 대해 언급하며 주류 가격을 내리지 못하는 현실을 전했다. 그는 “식당에서 파는 주류는 공장 출고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유통과정, 인건비 등 다른 요건도 감안해 가격이 결정된다”라며 “주류 제품이 공장에서 출고되면 지역별 도매상을 거친 뒤 식당 등 외식 업장에 공급된다. 한 차례의 도매 과정이 있다 보니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어 “또한 식사나 안주류 등에서 마진이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주류 판매에서 난 수익으로 부족한 손실을 채운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자영업자 입장에선 (주류) 가격 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