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건강보험 계획, 희귀질환자 의료비 부담 줄여야

2차 건강보험 계획, 희귀질환자 의료비 부담 줄여야

글‧(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


건강보험의 재정이 위기라는 뉴스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겁다. 가뜩이나 희귀의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 부족을 이유로 이 마저도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희귀의약품은 대상 환자 수가 소수이기 때문에 수익성의 문제로 상대적으로 고가일 수밖에 없고, 이따금 건강보험의 재정을 위협하는 골칫덩이로 비춰지곤 한다. 이렇게 사람의 목숨 앞에서 비용효과성을 우선적으로 논하는 것을 볼 때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이 참으로 무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의 생명과 삶을 좌우하는 ‘치료받을 권리’를 경제적인 논리로 제한하기에 앞서, 한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창출되는 긍정적 효과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희귀질환 발병으로 인해 파생되는 환자 가정의 복합적인 문제 상황을 예방하는 기능과 적절한 치료환경을 조성하여 환자와 그 가족이 사회‧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됨으로 인해 생산되는 가치 등은 경제논리에 비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2012-2021) 허가된 희귀의약품 136개 중 건강보험에 등재된 것은 52.9%에 불과하다. 희귀의약품에 대한 지출 또한 전체 약제비 지출의 3.6%로, OECD 중간값 6.8%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 인식 하에 정부는 지난 2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중증⋅희귀질환자 등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하반기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지원은 결국 건강보험 정책의 근본적인 구조 및 재정과 연관되기 때문에, 향후 5년간 건강보험 정책의 토대가 될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그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19일 국회 보건복지위 이종성 의원과 미래건강네트워크에서 주최한 ‘국민이 원하는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향후 건강보험 정책이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 토론회에서 미래건강네트워크는 한국갤럽과 함께 국내 만 19세 이상 성인 5,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보험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 응답자 85%가 중증질환 중심으로 필수의료 보장을 현재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중증‧희귀난치성질환 치료를 지원하는 별도 기금 조성에 동의하는 응답자 또한 82.4%로 나타났다. 이는 본 연합회가 2021년 실시한 혁신 신약의 급여 적용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와도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 중증⋅희귀질환자들의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들이 시행되어야 할까? 먼저 건강보험에서 낭비되는 지출들을 절감하고 이를 중증희귀난치질환에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증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상급종합병원에 환자들인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심하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종합병원이나 병⋅의원에 비해 높은 수가(종별 가산)를 적용받기 때문에 불필요한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줄이면 추가적인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OECD 대비 사용량이 약 2배 수준인 경증질환의 의약품 과용 빈도를 낮추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이다. 소화제, 제산제, 항생제 등 과다하게 처방되는 경증 약제비에 대한 사용량을 줄여 나가면서, 본인이 부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이들 경증 약제비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을 상향하고, 그 절감된 재원을 중증희귀질환 확대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정된 재원을 꼭 필요한 필수의료에 선택과 집중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을 법률에 명시된 수준(보험료 수입의 20%)으로 상향하여 국가의 책임을 증대하고, 국민들이 동의하는 만큼 건강보험이 아닌 별도의 의료비 지원 기금을 조성하여 필수의료 보장 영역인 중증희귀질환 치료의 사각지대 발생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경우 2011년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았으나 효과가 뛰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항암제의 신속한 접근을 위해 암 기금(Cancer Drug Fund)을 조성하였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2022년에는 희귀의약품 기금(Innovative Medicines Fund)을 도입한 사례가 있다. 영국 뿐 아니라 호주, 벨기에, 이탈리아, 뉴질랜드 등에서도 별도의 의료비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서둘러 도입되어 건강보험에 등재되기 전인 희귀의약품에 대한 환우들의 접근성을 보장해주는 의료안전망으로 정착하길 기원한다.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도입’이 선정될 만큼 정부도 보다 많은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들이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내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이 처한 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편으로 관련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소하려는 끝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새롭게 마련될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통해 중증‧희귀질환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치료를 보장받고 질환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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