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공공재인가 [안태환 리포트]

의료는 공공재인가 [안태환 리포트]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미국 경제학자 폴 사무엘슨이 제창한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는 비경합적이며 비배제적인 재화 또는 용역 서비스를 의미한다. 다소 난해한 용어지만 단어 속에 함재되어 있는 의미는 간결하다.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은 시간, 지역, 경제적 상황이나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 일테면 이렇다. 도로, 철도, 교량, 항만, 수도, 전기, 건강보험 등은 대표적 공공재로서 이에 해당한다.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 관리되는 도로는 공공재이다. 도로에 다니는 차들이 없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교통량이 늘어난다면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 간에 경합성이 생긴다. 반대로 도로에 이용료를 부과하면 배제성이 생기는 식이다.

공공재 생산에는 반드시 무임승차자의 문제가 결부되어서 소비자들이 공공재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편익만 취할 경우 적정 수준의 공공재가 생산되지 않는다. 고속도로 이용료가 그렇다. 이 상황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점은, 소비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수요량을 정직하게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공공재는 정부에서 적정량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 대한 재원조달은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그렇다.

공공재와 반대로 사적재는 일반적인 재화로 값을 치른 사람만이 물건을 소유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재화이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거나 놀이공원에 입장하려면 값을 치러야만 하고, 대가를 지불한 사람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소비의 배제성이라고 한다. 한편, 내가 상품의 일정 물량을 소비하게 되면 다른 사람은 내가 소비하고 남은 물량만큼만 소비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쓰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를 경합성이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사적재는 배제성과 경합성을 동시에 지닌다. 공공재인 의료 서비스가 사적재의 개념을 포함하는 이유이다. 종합병원 입원이 경합성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대입하면 될 것이다.

현실에서 보이는 많은 재화 중에서 정확하게 공공재라고 부를만한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경합성+비배제성’인 재화나,‘비경합성+배제성’인 재화가 더 많을 것이다. 무료입장이 가능하지만 한적한 국립공원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 있는 공공재지만, 만약 사람들이 붐빈다면 경합성이 발생해서 순수한 공공재로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재의 생산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그 편익은 절대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일테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국방 서비스와 같은 공공재는 오로지 정부의 역할만으로 가능하다. 공공재는 다수가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곳에 배분되고 있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장의 실패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공재의 비배제성 때문에 공짜로 이용하려는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시장실패로 볼 수 있다. 의료의 예를 들어보자. 질환 진단에 있어 값비싼 진단 기기로 알려져 있던 CT와 MRI의 건강보험 적용으로 접근이 쉬어지면서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압박은 커졌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이런 경우 의료는 공공재의 특성과 사적재의 특성을 포괄한다.

정부와 의사단체 간에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차용되는 ‘의사는 공공재’ 란 주장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의료는 공공재이기도 하지만 사적재이기도 하다. 모든 국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지만 수가는 정해져있고 치열한 경합을 전제로 한다. 의사도 그렇고 의료소비자인 국민도 그렇다. 정부의 주장대로 의사가 공공재라면 국민들에게 공공재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정부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이 인구 소멸 지역에 의사를 구하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는 작금의 상황은 그간 정부가 주장하던 공공재 의사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급차 안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오늘의 한국 사회 의료 환경은 외상외과, 흉부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감염내과, 응급의학과 등의 전문의와 역학조사관 등을 충분히 확보하는 의료정책을 정부가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원을 투입해 적정한 처우를 제공했다면 공급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사적재의 특성도 지닌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배경이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날로 열악해지는 지역 의료 서비스 환경 속에  환자들은 대도시로 향한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대도 공공재로서 의사의 헌신과 공익적 역할만 주장할 것인가.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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