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찍은 전공책, ‘삐빅’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친절한 쿡기자]

‘찰칵’ 찍은 전공책, ‘삐빅’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친절한 쿡기자]

대학은 왜 불법복제 천국이 됐나

11일 네이버 한 중고물품 거래 카페에 ‘PDF’를 검색해서 나온 게시글 목록.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오랜만에 방문한 대학 강의실에서 전공 교재를 펼치는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학생 40명 대부분 수업을 들으려고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를 꺼냈습니다. PPT 인쇄물에 펜으로 필기하는 학생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교수가 나눠준 프린트를 사진으로 찍고 다시 되돌려주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대학 강의실 풍경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건 코로나19의 영향이 컸습니다. 과거 전공 책을 스캔해 교재로 이용하던 것에서 PDF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죠. 지난 3년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교수들도 전공 책 대신 PPT와 PDF 파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익숙해진 모습입니다. 강의실에서 만난 대학교 4학년 A씨는 “1년 넘게 책 산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전공 책 구매는 줄었고, 태블릿 PC 구매는 늘었습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2022년 1학기까지는 교재 구매율은 90% 이상이었지만, 대면 수업이 다시 시작된 2022년 2학기 교재 구매율은 6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국내 태블릿 PC 보유율은 3년 연속 증가했습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내 태블릿 PC 보유율은 2020년 19%에서 2021년 24%, 2022년 36%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2021년 38%였던 19~29세의 태블릿 PC 보유율은 2022년 50%로 급증했습니다.

1년 동안 책을 구매하지 않고 수업을 듣는 건 A씨에게 좋은 일입니다. 두꺼운 전공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가방이 가벼워졌습니다. 비싼 전공 책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그럼 책을 이용하는 비용은 어디로 간 걸까요.

교재를 구매하지 않고 수업에 이용하는 건 모두 불법복제입니다. 대학교 내 불법복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수강인원에 맞춰 미리 제본한 책을 3000원에 판매하는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나눠주다 보니 불법이란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과거 전공 책 대신 제본 책을 샀다는 B(30·직장인)씨는 “모두 다 그렇게 했다”라며 “학교에서 판매하니 불법인 줄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젠 교재가 모두 디지털로 바뀌며 불법복제는 ‘디지털 불법복제’로 진화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업계는 지난 3월 신학기를 맞은 대학가를 찾아 “책 도둑질을 멈춰주세요”라고 호소했습니다. 대학가에서 이뤄지는 불법복제와 스캔이 장기적으로 학술 및 출판계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난 11일 문화체육관광부도 3000여개의 출판물을 불법 복제해 PDF 파일로 대량 유통한 복사업체를 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출판물을 스캔한 디지털 파일로 온라인에서 불법 거래하는 행위가 많아져 출판계가 입는 피해가 크다는 얘기겠죠.

중요한 건 사전 예방입니다. 대학생들 스스로가 불법복제와 스캔이 저작권 침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디지털 불법복제로 교재 저술의 감소‧중단으로 이어져 결국 대학 사회로 다시 돌아오는 비극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말이죠.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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