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엔 ‘초등 의대반’도 있다던데 [놀이터통신]

대치동엔 ‘초등 의대반’도 있다던데 [놀이터통신]

온라인 속 ‘초등 의대반’ 광고글 봇물
교육 양극화 부추기는 사교육

서울 대치동 인근 학원에 아이들이 등원하고 있다.   쿠키뉴스DB

[놀이터통신 53]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입시 현장의 의대 열기는 광풍에 가깝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올해 대입 정시모집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합격자 중 29%가 등록을 포기했다고 한다. 지난해 서·연·고 자퇴생 4명 중 3명(75.8%)은 자연 계열이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자연 계열 학생들이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한다. 매년 의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가 ‘서울대’라는 농담을 웃어넘기기 힘들다.

의대 광풍이 거세다 못해 ‘초등학생 의대반’이 학원가에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실제 ‘초등 의대 준비’로 인터넷 검색을 하자 “초등 의대 대비반 신입생 모집합니다” “초등부터 준비해서 이뤄낸 의대 합격 스토리” “초등부터 의대 목표” “초등 중등 의대 보내는 공부 로드맵” 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학원 광고들이 쏟아졌다.

‘의대 블랙홀’이란 말이 실감 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입시 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의대에 가기 힘들다는 불안 마케팅. ‘밥은 굶어도 애들 학원은 보낸다’는 한국 사회에 제대로 먹힌 듯하다.

사교육 1번지 강남 대치동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초등 의대 준비반이 문을 열었다. 의대 입시 준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와 학원 커리큘럼 등을 살펴봤다. 보통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준비를 시작하면, 졸업 전 선행으로 중등 학습을 마치고 중·고등학생 때 고등 심화 문제를 중심으로 실력을 다지는 코스였다. 

교실에 앉아있는 초등학생들. 사진공동취재단

“사교육, 이 정도까지?” 박탈감 느끼는 학부모들

교육이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미 교육은 부모 경제력과 결합해 계층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발견하는 게 힘들 정도로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렸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지만, 더 나은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기대는 낮다.

‘초등 의대반’을 보는 학부모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학원 상위반에 들어가려고 사교육을 받는 게 현실이다. 이젠 이보다 더한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했다.

초등 두 자녀를 둔 박모(41)씨는 “초등 의대반 얘길 들으니 기운이 빠진다. 지금도 치솟은 학원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며 “다니는 학원도 다 정리하려는 상황에서 배울 의지가 있는 내 아이의 재능을 살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중에 아이에게 원망을 듣진 않을지 무섭다”고 말했다. 

자녀 1명을 둔 임모(39·여)씨는 “고물가로 책 몇 권 사는 것도 고민하는 상황에서, 고소득 부모의 아이들은 의대 준비를 할 정도로 사교육에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속 올케어반의 현실판 아니냐. 부럽지만은 않다.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부모의 대리만족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초등 의대반을 뉴스로 처음 접했다는 주부 최모(40)씨는 “눈을 의심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는 “특별히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무난하게 선행이 가능할 때 의대 준비를 해볼 수 있겠지만 과연 의대반에 들어간 모든 아이가 선행이 가능한 아이일까”라며 “재밌어서 수학을 푸는 아이들이 아니라면 사실상 아동학대”라고 했다. 

너도 의대 준비반 가서 열심히 공부해볼래?” 초등 고학년 아이에게 물었다. “피 보는 직업은 무섭다”던 아이는 공부도 싫지만 주삿바늘을 쳐다보지 못하는데 의사가 어떻게 되겠냐고 웃었다.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 다행스러웠다. 아이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꿈도 있다고 덧붙였다. 묻지 않았으면 몰랐을 꿈이다. 

교육은 지식과 정보를 쌓는 일인 동시에,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진로를 탐색·설계하는 기회다. 꿈을 제대로 찾아볼 시간과 기회가 없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낮은 공교육 신뢰도 때문에 입시와 사교육에 ‘올인’하게 하는 교육환경도 걱정이다. 아이의 적성을 찾는 것보다 지나친 선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은 더 걱정이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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