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영양제 맞아요”...여전히 명절이 두려운 주부들 [놀이터통신]

“미리 영양제 맞아요”...여전히 명절이 두려운 주부들 [놀이터통신]

세상 좋아졌다지만…“명절이면 돌밥돌밥” 주부들 아우성
‘명절 파업’ ‘셀프 효도’ 등 조금씩 달라지는 명절 분위기

게티이미지

[놀이터통신 52] 명절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배달’ ‘간편식’ 차례상을 이용하는 가정이 늘고있어 ‘옛날보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매년 명절 때만 되면 쏟아지는 ‘명절증후군’ 이야기가 쏙 들어갈 정도로 세상이 정말 변했을까요? 기자가 만난 6명의 워킹맘은 “딴 세상 이야기”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전 부치기의 달인

결혼 후 전 부치기의 달인이 됐다는 그들. 아직 부모님 댁에서 차례상을 올리거나 가족 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아 메인 요리는 시어머니가 맡고, 며느리들은 보조에 불과하지만 비교적 간단한 전 부치기 등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결혼 10년차 워킹맘 A(39)씨는 “명절 첫날 차례에 지낼 전만 2시간 넘게 부친다”며 “전 부치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면 점심, 저녁 차릴 시간이 돌아온다.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의 준말) 진짜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출근으로 도와드릴 수 없어) 시어머니는 명절 일주일 전부터 혼자 식사 준비를 하시는데 정말 대단하고 죄송스럽다”며 “주부들은 명절 전부터 끝날 때까지 쉴 틈이 없는데 옆에서 도와주진 않고 음식과 술로 잔치를 벌이는 다른 가족들을 보면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결혼 7년차 워킹맘 B(36)씨는 명절만 되면 전만 봐도 속이 울렁인다고 합니다. 구부리고 앉아 전을 부치며 기름 냄새를 종일 맡을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고요. 

#돌림노래 같은 손님들…“자고 가”라는 무서운 한마디

명절이 되면 대체로 많은 가족·친척이 큰 집에 모이는데 도착하는 시간은 각기 다릅니다. 이 때문에 하루에 상을 몇 번이나 차리는지 분간이 안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것만 마치고 친정에 가야지”하며 앞치마를 풀러도 때마침 손님이 도착하면 다시 집안일을 거들어야해 속 상할 때도 있습니다.

주부 C씨는 “1년에 한 번 볼까 한 친인척이라면 얼굴도 안 비추고 자리를 떠나긴 눈치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자고 가”라는 어른들의 말도 명절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결혼한 자식을 곁에 두고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명절 상차림과 집안일로 녹초가 된 내 몸을 편하게 쉬게 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죠. 주부 D씨는 “집이 근거리인데도 부모님들이 왜 자고 가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역.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쿠키뉴스DB

#명절엔 시댁 먼저? 누가 정했나요 


오는 21일 시작되는 올해 설 연휴는 나흘에 불과해 짧은 편입니다. 짧은 연휴에 양가를 방문해야 하다보니 가족 내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죠. 

수도권에서 먼 지방에 시댁을 둔 주부 E씨는 명절 연휴 대부분을 시댁에서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이나 명절이 지난 다음 돌아오는 주말께 친정을 찾는다고 합니다. 딸부잣집 막내딸인 주부 F씨는 “친정보다 시댁을 (명절마다) 항상 먼저 가야한다는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명절마다 자매들 모두 시댁을 먼저 찾아 정작 부모님은 딸들이 오기 전까지 외로운 명절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내가 챙긴다

“시댁에선 아들 대접, 친정에선 사위 대접”

F씨의 이같은 말에 대부분 주부가 공감했습니다. F씨는 “사위는 처가에 가서 일을 하지 않지만 며느리는 시댁에 가면 하루 종일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는 아예 명절 전부터 ‘셀프 건강 챙기기’에 돌입한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최근 설 명절을 앞두고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A씨는 “명절 때가 되면 며칠 전부터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며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부 부부는 명절 전후 서로에게 하루동안 ‘자유시간’을 보장하는데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명절 파업합니다

물론 세상이 아주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시댁에 당당하게 명절 파업을 선언하는 며느리가 있고, 처가 또는 시가 가리지 않고 전을 부치거나 설거지, 청소를 하는 남편들도 있습니다. 

명절마다 시가와 처가를 번갈아 가며 움직이거나 각자의 집에서 셀프 효도를 하는 것에 합의하는 부부도 있고,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며 아예 명절 모임 자체를 없애거나 간단한 식사로 대신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주부 G씨는 명절이면 휴가를 떠나겠다는 양가 부모님의 결심 때문에 각각 해외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대체로 부부 가족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결혼 14년차인 기자는 명절에 갈비찜 하나만 요리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아이들이 좋아해서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반찬가게 음식들로 대신합니다. 역시 며느리였던 시어머니가 차례 등을 “내 대에서 끊겠다”며 단칼에 잘라낸 덕분인데요. 줄곧 명절이면 가족들을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손수 음식을 장만하던 친정어머니 역시 사돈의 영향 덕분에 이제는 외식으로 마음도 몸도 편하게 명절을 보내고요. 

세상은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용기와 주변의 배려, 도움이 없다면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 소중한 내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며 곁에서 함께 하는 건 어떨까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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