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잠이 안 와. 눈을 감으면 물이 다시 나를 덮치는 것 같아….”
20일 오후 경기 고대안산병원. 세월호 침몰사고 생존자인 단원고 A군이 왼쪽 손등에 수액 바늘을 꽂고 황토색 담요를 두른 채 1층 로비 구석을 서성였다. 검지 손톱 끝으로는 이동식 철제 수액걸이대를 쉴 새 없이 따닥따닥 두드렸다. 불안감이 잔뜩 반영된 몸짓이다. A군은 침몰 당시 배가 급격히 기우는 순간 선실 한쪽에 몰려있던 친구들이 뒤엉키며 시커먼 바닷물에 묻히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며칠 내내 수색을 방해했던 날씨는 짓궂게도 사고 닷새만인 이날에야 다시 따뜻해졌다. 그러나 A군은 찬 바닷물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수시로 담요를 끌어안으며 움츠렸다. 친구 2명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올라가서 좀 쉬자”고 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내가 미쳐버릴까봐 눈을 못 감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벌겋게 핏발이 선 눈은 초점을 잃었다. 딱딱딱딱…. 철제 막대에 손톱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생존 학생들은 극단적인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경미한 타박상만 입었더라도 정신적으론 ‘중증 외상’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다. 감수성이 한창 풍부할 나이에 받은 고통도 적잖은데, “나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까지 더해져 생존 학생들의 정신적 혼란은 극에 달한 상태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가동하고 심리상담 및 치료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입원한 고대안산병원에서는 증상이 심한 일부 학생들에 대해 1대 1 심층면담에 착수했다. 병원은 학생들의 안정을 위해 지난 19일부터 가족 이외의 면회를 차단했다.
학생들은 상담을 거쳐 상태에 따라 전문기관에서 심층 치료를 받게 된다. 행동 요법을 통한 인지행동 치료, 뇌 활동을 촉진시켜 심리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재처리요법, 뇌파를 이용한 뉴로피드백 등 다양한 치료법이 동원된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학생들은 시각·청각·촉각적 이미지가 남긴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고려대 의대 신경정신과 김정일 교수는 “추운 물 속에서 아이들이 발버둥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 고통스러울 것”이라면서 “만약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울증 등 만성 스트레스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상 후 성장(PTG)을 위해서는 빠르고 담대한 심리치료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심리치료는 긴 과정, 차분히 집중 치료를=전문가들은 “심리적 치유가 늦어질 경우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까지 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뿐만 아니라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장애는 종종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생존 학생들이 현재 수면 장애와 소화 장애, 과민반응 등을 겪고 있다.
을지대 정신건강의학과 최삼욱 교수는 “아직 성장기인 아이들의 경우 집단 트라우마가 성인 이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 비슷한 상황에 대한 공포 또는 무기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적 충격의 여파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또 “당장은 무덤덤할지라도 6개월 뒤에 느닷없이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나는 등 우려 요소는 잠재돼 있다”고 말했다. 안산=정부경 황인호 전수민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20일 오후 경기 고대안산병원. 세월호 침몰사고 생존자인 단원고 A군이 왼쪽 손등에 수액 바늘을 꽂고 황토색 담요를 두른 채 1층 로비 구석을 서성였다. 검지 손톱 끝으로는 이동식 철제 수액걸이대를 쉴 새 없이 따닥따닥 두드렸다. 불안감이 잔뜩 반영된 몸짓이다. A군은 침몰 당시 배가 급격히 기우는 순간 선실 한쪽에 몰려있던 친구들이 뒤엉키며 시커먼 바닷물에 묻히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며칠 내내 수색을 방해했던 날씨는 짓궂게도 사고 닷새만인 이날에야 다시 따뜻해졌다. 그러나 A군은 찬 바닷물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수시로 담요를 끌어안으며 움츠렸다. 친구 2명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올라가서 좀 쉬자”고 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내가 미쳐버릴까봐 눈을 못 감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벌겋게 핏발이 선 눈은 초점을 잃었다. 딱딱딱딱…. 철제 막대에 손톱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생존 학생들은 극단적인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경미한 타박상만 입었더라도 정신적으론 ‘중증 외상’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다. 감수성이 한창 풍부할 나이에 받은 고통도 적잖은데, “나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까지 더해져 생존 학생들의 정신적 혼란은 극에 달한 상태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가동하고 심리상담 및 치료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입원한 고대안산병원에서는 증상이 심한 일부 학생들에 대해 1대 1 심층면담에 착수했다. 병원은 학생들의 안정을 위해 지난 19일부터 가족 이외의 면회를 차단했다.
학생들은 상담을 거쳐 상태에 따라 전문기관에서 심층 치료를 받게 된다. 행동 요법을 통한 인지행동 치료, 뇌 활동을 촉진시켜 심리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재처리요법, 뇌파를 이용한 뉴로피드백 등 다양한 치료법이 동원된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학생들은 시각·청각·촉각적 이미지가 남긴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고려대 의대 신경정신과 김정일 교수는 “추운 물 속에서 아이들이 발버둥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 고통스러울 것”이라면서 “만약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울증 등 만성 스트레스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상 후 성장(PTG)을 위해서는 빠르고 담대한 심리치료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심리치료는 긴 과정, 차분히 집중 치료를=전문가들은 “심리적 치유가 늦어질 경우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까지 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뿐만 아니라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장애는 종종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생존 학생들이 현재 수면 장애와 소화 장애, 과민반응 등을 겪고 있다.
을지대 정신건강의학과 최삼욱 교수는 “아직 성장기인 아이들의 경우 집단 트라우마가 성인 이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 비슷한 상황에 대한 공포 또는 무기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적 충격의 여파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또 “당장은 무덤덤할지라도 6개월 뒤에 느닷없이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나는 등 우려 요소는 잠재돼 있다”고 말했다. 안산=정부경 황인호 전수민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