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과학] 한 국내 일간지의 보도처럼 냉장고에 끔찍한 벌레가 살 수 있을까?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가능성을 물었다.
한국일보 인터넷판은 지난 20일 ‘냉장고에 끔찍한 벌레가 살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전체적인 기사의 맥락은 집안 곳곳에서 벌레의 흔적이 발견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친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서 예로 든 것 중 하나가 바로 냉장고 문짝과 본체 사이를 밀폐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고무 패킹 부분의 바퀴벌레 흔적이다.
자칫 기사의 제목만 보고 독자들은 ‘냉장고 내부에 벌레가 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기사에 언급된 부분은 단지 패킹 부분일 뿐이다.
본보는 냉장고 내부에 벌레가 살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취재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작동중인 냉장고에선 벌레들이 활발한 먹이활동을 하며 알을 낳는 등 세대를 이어가는 ‘서식’은 불가능하다.
냉장고를 제조하는 삼성전자는 냉장고 내부의 곤충 서식에 대한 어떤 민원도 접수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냉장고 내부에는 곤충의 서식이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했다.
강제로 집어넣으면 일시적으로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살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쌀통에서 쌀벌레가 생겨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냉장고에서 벌레가 살아갈 수는 없다. 냉기를 바깥으로 유출하지 않도록 밀폐 설계가 돼 있기 때문에 벌레가 들어올 수 있는 틈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전 제조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감추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남는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냉장고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iN에선 전직 가전 A/S 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cho*****의 글이다.
“벌레들… 그들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현직에서 수리하면서 직접 본 것들인데요. 냉장고는 기본적으로 (벌레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추운 냉각기에까지 삐질삐질 들어간 이유도 모르겠지만, 고치다 보면 시체 많이 나옵니다. 바퀴벌레, 개미, 이름모를 벌레들 많이 들어갑니다. 문 여닫을 때에 들어간다기 보다는 제품에 틈틈이 소비자가 모르는 공간들이 많습니다.”
이 네티즌의 주장에 따르면 냉각기 등 식품을 보관하는 공간 외부에는 물론 소비자가 모르는 틈새를 통해 식품 보관실까지 벌레가 들어오는 것이다.
냉동실은 영하 20도, 냉장실은 영상 3도로 유지되고 있다고 가정할 때 이 조건에서 과연 서식이 가능한 곤충이 있는지 전문가에게 물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자원관 관계자는 “냉장고 문이 열리는 틈을 타서 바깥에 있던 벌레가 내부로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냉장고 내부는 벌레가 활발히 서식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자원관에 따르면 우연찮게 냉장고 바깥에 있던 벌레가 들어간다고 해도 냉동실에서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벌레가 냉동실에 들어간지 1~2주 정도 지나면 99%이상 죽는다.
냉장실에서는 대사활동이 굉장히 느려지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화돼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외부와 가까운 냉장고 문쪽에 바짝 붙어서 생명을 유지하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탈출할 수는 있다.
냉장고와 같은 혹독한 기후조건에서도 살아남는 곤충이 간혹 있긴 하다. 빙하 지역이나 고산 지역에서도 번식하면서 살아가는 곤충들이 있는데, 국내엔 갈르와벌레(사진)라는 종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종은 주로 산간 지역에 서식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의 냉장고에서 발견된 확률은 0에 가깝다. 이들도 냉장고와 같은 기온 조건에선 단지 죽지 않는다 뿐이지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해충 방제 회사인 세스코 역시 “벌레가 응축기나 고무 패킹 외에 냉장실 또는 냉동실 내부에 서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인했다.
다만 냉장고 하단에는 물이 고일 수 있기에 나방파리, 날파리 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국일보의 보도처럼 냉장고 문틈의 패킹은 바퀴벌레의 주요 이동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일보 인터넷판 기사는 30일 현재 ‘문틈 먼지·천정 얼룩 무심코 넘겼다간… 헉! 해충 경보음 뚜뚜뚜’로 바뀌어 게재돼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