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지구촌]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가 낙마한 지 사흘 뒤인 지난 3월 18일 발생한 ‘페라리 교통사고’가 권력 교체기를 맞은 중국 정계를 뒤늦게 흔들고 있다. 이 사건은 권력 재편 과정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진영에 상당한 타격이 되고 있다.
교통사고의 장본인은 이번에 중앙판공청 주임에서 중앙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후진타오 최측근인 링지화(令計劃)의 아들 링구(令谷). 20대인 링구는 당일 이른 새벽 검은색 페라리 승용차에 여대생 2명을 태운 채 베이징 순환도로를 질주하다 교각을 들이받은 뒤 반대편 차로로 튕겨져 즉사했다.
페라리 승용차는 500만 위안(약 8억9000만원)짜리였다. 당시 링구는 옷을 반쯤 벗은 상태였고 소수민족이 다니는 중앙민족대학 재학생인 두 여대생 중 한 명은 옷을 입지 않았고 한명은 반쯤 벗고 있었다.
여대생들은 한 명은 위구르족, 한 명은 티베트족으로 확인됐다. 사고 뒤 한 명은 몸이 마비상태에 빠졌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보시라이 사건’에 이어 중국 지도부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스캔들이었지만 즉각 보도통제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나 환구시보(環球時報)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사고 하루 뒤인 19일 이례적으로 사고 발생사실을 보도했으나 사망자 신원은 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망자는 특별한 배경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인용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링지화는 그 뒤 사건을 은폐하려다 자칭린(賈慶林) 정치협상회의 주석에 의해 진상이 들통났다. 자칭린은 이러한 상황을 정치적 후원자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에게 보고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일 전했다. 이렇게 된 데는 사망진단서 조작이 직접적 계기였다. 링지화는 사망진단서에 아들의 성을 ‘자’씨로 올렸고 그 뒤 인터넷에서는 자칭린이 혼외정사로 얻은 아들이 사고를 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자칭린은 비밀리에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링지화의 아들이 당사자임을 확인했다. 장쩌민은 이 보고서를 접한 지 석 달쯤 지나 한 회의에서 후진타오에게 이를 들이밀며 공청단계열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후진타오는 이에 불구하고 링지화를 계속 밀기로 마음먹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SCMP는 링지화가 사고 뒤 후진타오에게 “총서기님을 모시느라 아들을 제대로 챙길 시간이 없었다”고 읍소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링지화가 사고 2주일 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후진타오를 수행해 한국, 캄보디아, 인도를 방문했던 것도 반대 진영에는 공격의 빌미가 됐다.
결국 링지화는 중앙통일전선부라는 상징적 자리로 밀려났고 정치국 위원(24명)에도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후진타오의 청렴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 여파가 곧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공개되면서 후진타오 진영은 정치국 위원에 자파 인물을 한 명이라도 더 넣기 위한 권력 투쟁에서 수세에 빠졌다. 이는 곧 장쩌민 계열의 발언권이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징=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