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지켜도 되는 두루뭉술한 ‘장애인 차별 금지법’

안 지켜도 되는 두루뭉술한 ‘장애인 차별 금지법’



[쿠키 사회]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다. 그러나 올해로 29회째인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도내 장애인들은 법은 있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고 말한다. 장차법은 고용과 교육, 시설, 서비스 이용 등에 대한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를 담고 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편견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들은 모호하게 규정된 법도 문제지만 법이 있어도 이와 무관한 현실의 벽이 더 크다고 입을 모았다. 법의 엄격한 적용과 더불어 사회의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29회 장애인의 날을 맞는 도내 장애인들의 요구다.

도내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차별과 생존권, 학습권, 이동권 등에 대한 문제와 개선점을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최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를 관람하러 간 전주의 중증장애인들은 좌석 옆 통로에서 공연을 봐야만 했다. 장애인 전용석이 10석 가량 구비돼 있었지만 모두 로얄석이었다. 요금은 10만원으로 장애할인 50%를 하더라도 5만원. 가뜩이나 생활형편이 좋지 않은 이들이 하루 문화생활 비용으로 지불하기에는 큰 돈이다. 이들은 결국 3층 B석 티켓을 끊었지만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 통로에서 공연을 봤다. 이날 장애인용 로얄석은 텅 비어 있었다.

장차법은 장애인이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에 있어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공연장도 법에 맞춰 장애인 전용석을 마련했다. 그러나 장애인은 현실적 요건 때문에 이를 이용할 수 없었다.

전주에 살고 있는 지체장애인 A씨는 최근 이사를 하려고 계약까지 마쳤지만 집을 옮길 수 없었다.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마땅한 집을 찾고 계약을 했지만 집주인에게 장애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A씨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뒤늦게 안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지고 왠지 불쾌하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대로 이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려 했던 뇌병변 장애인 B씨도 현실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신용 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장애가 있을 뿐 의사소통과 사고체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융자거부를 당한 것이다.

지난해 광주인권사무소에 진정된 장애관련 사건은 91건으로 장차법 시행 이전인 2007년 23건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다. 법 시행과 함께 장애인의 인권의식도 함께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아 현실의 벽은 높은 것이다.

또 보건복지부가 지난 1∼2월 전국 비장애인과 장애인시설 종사자 등 509명을 상대로 장차법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가 잘 모르고 있다고 답하는 등 비장애인들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강현석 소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겼지만 법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측면이 있고 장애인 차별이 다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며 "법을 넘어 현실에서 시민과 사회의 인식이 나아지고 편견이 사라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전북일보 임상훈 기자 (axiom@jjan.kr)

신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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