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이 은폐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공개에 앞장선 일본인 [쿠키인터뷰]

日이 은폐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공개에 앞장선 일본인 [쿠키인터뷰]

-日, 韓에 은폐하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전달
-일본 기자 후세 유진의 정보 공개 청구 덕분
-“우키시마호 관련 공문서 600건 더 있다”

일본 프리랜서 기자 후세 유진(布施祐仁)

한국 정부는 지난달 5일 조선인 수천 명이 희생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일본 정부로부터 받았다. 그간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는 침몰할 때 소실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없다고 했던 명부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에는 한 일본인의 노력이 있었다.

지난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자 조선은 광복을 맞이했다. 같은 달 22일 일본 배 우키시마호는 아오모리현(青森県)에서 강제 동원 조선인들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향했다. 24일 우키시마호는 돌연 방향을 틀어 마이즈루(舞鶴)로 가던 중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침몰 원인을 두고 패전한 일본군의 자폭이라는 설, 마이즈루만에 있던 기뢰와 충돌했다는 설 등이 제기된다. 승선자 규모 역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본 정부의 설명이 엇갈린다.

한·일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외면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05년에야 진상조사를 진행해 ‘귀국선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에 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부정확하다는 사실 외에는 뚜렷한 결론이 없었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우키시마호 유족들이 건 소송에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국 정부의 외면과 침묵에 우키시마호 생존자 및 피해 유가족은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지난 2017년 쿠키뉴스가 연재한 특별기획 [지워진역사, 강제동원]-우키시마호 참사 72년, 가라앉은 귀향의 꿈)

침몰했다는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발견해 낸 건 일본 프리랜서 기자 후세 유진(布施祐仁)이다. 그는 2021년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곳인 마이즈루에 취재 차 방문했다가 현지인으로부터 관련 이야기를 듣게 됐다. 수많은 조선인이 사망한 대형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그때부터 우키시마호 사건과 관련된 책 등을 사 읽으며 공부했다.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가 일본 정부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일본 정부가 숨겼던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는 그렇게 공개됐다. 행정안전부는 외교부를 통해 일본 정부에 우키시마호 자료를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5일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가 담긴 19건의 자료를 전달했다. 성명, 생년월일, 본적 등이 적혀 있어 명부 전체가 공개될 경우 피해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역사 중 하나인 우키시마호 사건의 피해를 증명한 후세 기자를 인터뷰했다.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사진. 후세 유진 제공

-우키시마호 사건을 모르는 한국인도 많다. 승선자 명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

1990년대 우키시마호 유족들이 일본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나는 정보 공개 제도를 이용해 당시 재판 기록을 읽었다. 그때 후생노동성에 우키시마호 사건에 관한 문서가 대량 보관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관련 문서를 정보 공개 청구했다. 담당 부서와 교류를 하다가 승선자 명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보 공개 청구를 하는 과정은 어땠나.

일본에는 공문서관리법과 정보공개법이라는 게 있다. 정부에 공문서 공개를 청구하는 것이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승선자 문서가 있는데 없다고 거짓말을 할까 봐 걱정됐다. 일본 정부는 실제로 그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명부가 공개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 기회에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 규명이 시작됐으면 했다. 내가 가장 바란 것은 유족분들에게 이 명부가 1초라도 빨리 닿는 것이었다. 우키시마호 유족회 회장 한영용씨처럼 아버지가 우키시마호 사건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일본 정부가 작성한 사망자 명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번에 공개된 승선자 명부에 이름이 있으면 우키시마호에 탔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나. 이 자료가 그 단서가 되길 바란다.

-승선자 명부가 일부만 공개됐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넘긴 명부는 총 19건이다. 조선인을 우키시마호에 태우는 것을 담당했던 오미나토(大湊) 경비부나 각각 협력 회사가 제일 처음 작성한 승선자 명부다. 이게 공개되면 우키시마호에 승선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의 인원수를 검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먼저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명부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일본 정부가 작성한 승선자 명부나 승선자 명부 이외의 자료다. 이번에 75건 명부 전부가 한국 정부에 전달되지 않은 것은 작성 경위 등 조사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가 소실돼 없다고 했다. 돌연 입장을 바꾼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후생노동성이 30년 전 재판에서 일본 정부가 ‘승선자 명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타 문서와 마찬가지로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한 것이라고 본다. ‘정치적 의도가 있어 공개한 것이 아닌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이즈루시 시모사바카 마을 인근 한 공터에 세워진 우키시마호 추모비. 쿠키뉴스 자료사진

-명부 공개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승선자 명부를 제공했을 때 사과의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우키시마호 사건 유족들이 일본 정부에 재판을 제기했을 때, ‘승선자 명부는 침몰했을 때 소실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승선자 명부나 침몰 후 복원을 시도한 명부는 있었던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방문해 자료를 전달했을 때 사과 한마디라도 하고 명부를 제공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으로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일본인을 대표해서 사과하고 싶다.

-아직 우키시마호 사건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다. 일본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였으면 하나.

애초에 우키시마호 사건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하지 않았다면, 또 일본이 전쟁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동원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한국인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명부뿐만 아니라 후생노동성에서 보관하는 600건 이상의 우키시마호 관련 공문서를 빨리 공개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한국 정부에도 바라는 게 있나.

일본의 후생노동성에는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이외에도 약 600건의 우키시마호 사건에 관한 공문서가 보관돼 있다. 한국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일본 정부에 공문서 제공을 요청했으면 한다.
또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이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아주고 계속 이야기해 나갔으면 한다. 없던 일로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 교과서에도 실어 학교에서도 가르쳤으면 좋겠다.

1954년에 발견된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 유골 사진. 쿠키뉴스 자료사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79년 전 우키시마호에 올라탄 사람들은 일본의 가혹한 강제 노동에서 해방돼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설렜을 것이다.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을 눈앞에 두고 마이즈루만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마이즈루만에는 지금도 많은 유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쿄 소재 사찰인 유텐지(祐天寺)에도 선체를 인양했을 때 발견된 많은 유골이 가안치된 상태로 있다. 이번 승선자 명부 건이 계기가 돼 유골 반환이 한시라도 빨리 실현되기를 바란다.


이유림 기자
reason@kukinews.com
이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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