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갑자기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며 거북이 걸음하는 것을 느끼고 운전자를 바라봤다. “응, 여기 어린이보호구역이라.”
어린이보호구역, 스쿨존(school zone)이란 초등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 학원 등 만13세 미만 어린이 시설 주변 도로 중 일정 구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으로 도로교통법 제12조에 명시되어 있다.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당 시설의 주변도로 가운데 일정 구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자동차 등과 노면전차의 통행속도를 시속 30km 이내로 제한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1995년 제정 이후에도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한 경각심은 쉽사리 고취되지 않아 결국 지난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사망한 당시 9세 어린이의 이름을 따 ‘민식이법’이 발의되기에 이른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른들은 이제 일어나지 않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를 막기 위해 서행한다. 그 구역 내에서만 시간이 멎기라도 한 듯이 행동하는 데에 우리가 동의한 까닭은 무엇일까. 학교 앞, 온 사회가 필히 보호해야 마땅한 대상들이 활보하는 영역에서, 만의 하나라도,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발생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수준 높은 간호혜택을 위해 제정하자는 간호법을 바라보는 국민의 판단도 이와 같이 극히 신중하고 충분히 숙려한 상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제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13개월 영아에게 잘못 약물을 투여한 5년차 간호사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의료현장이라는 곳은 그렇게 경험이 있는 의료진도, 순간의 착오로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는 하나의 팀으로 작용하여 팀원 개인의 활동을 함께 모니터링하고 위급한 순간에 여력이 되는 누군가라도 협동하여 위중한 상황을 신속하게 대응해 나아가야 하는 특수성을 지닌다.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보건의료 영역에서 특정 직역을 갈라치기해 얻는 결과는 무엇일까. 나머지 10개 보건의료직역의 아쉬움이 아니라 안전하고 신속한 치료와 돌봄을 받아야 할 국민의 돌이킬 수 없는 생명과 건강의 위해다. 대선 공약이었다는 빈약한 명목으로 간호법을 기계적으로 조급히 통과시켜야 한다면 묻고자 한다. 현행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인가? 의료 현장에 필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법안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환자보호구역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