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막나, FC 불나방 [‘골때녀’ 최애 월드컵④]

<편집자 주> 박선영을 응원하자니 한혜진이 눈에 밟히고, 한혜진을 응원하자니 옐로디가 걸린다. SBS 여자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얘기다. 마음 같아서는 여섯 팀 모두를 응원하고 싶지만, 하늘 아래 우승팀은 한 팀 뿐. 누군가는 패배의 쓴맛을 봐야 한다. 당신, 아직도 어느 팀을 응원할지 몰라 망설인다면 아래 기사와 함께 ‘최애’를 골라 보시라. 이름하여 [‘골때녀’ 최애 월드컵]

누가 막나, FC 불나방 [‘골때녀’ 최애 월드컵④]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축구는 한 선수만 잘해선 안 되는데?”

FC 액셔니스타 이영표 감독의 물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축구는 한 명의 슈퍼스타로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리오넬 메시를 보유했던 FC 바로셀로나가 17년 동안 모든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선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FC 개벤져스 황선홍 감독이 이영표 감독의 물음에 답답해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농담 아니라니까, (박선영 선수는) 슈팅이 선수처럼 가.”

SBS ‘불타는 청춘’ 출신 멤버들로 구성된 FC 불나방은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바르셀로나에 비유된다. ‘골때녀’ 리그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실력을 자랑하는 박선영을 보유한 팀이기 때문. 모두가 FC 불나방을 두려워하고, 우승후보로 가장 먼저 꼽는 이유다. 그렇다고 박선영 원맨팀은 아니다. 경기 흐름을 꿰뚫으며 항상 필요한 위치에서 흔들림 없이 공을 걷어내는 신효범의 단단한 수비벽 앞에 많은 팀들이 무너졌다. 놀라운 위치선정과 골 결정력으로 적은 유효슈팅에도 박선영보다 많은 골을 기록한 조하나의 존재도 눈에 띈다. 안정감 넘치는 선방으로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 안혜경은 언제나 듬직하고, 열심히 공간을 메우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내는 송은영과 서동주는 팀에 꼭 필요한 존재다. 대단한 팀워크나 혈기 넘치는 파이팅은 주무기가 아니다. 별다른 말 없이도 각자 제 역할을 소화하고, 묵묵히 서로를 믿어주는 팀이 FC 불나방이다.

약팀에서 강팀으로 성장하는 서사를 강조하는 ‘골때녀’에서 FC 불나방은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일종의 빌런이다. 모두가 이기고 싶어 하고, 한번 꺾으면 마치 우승한 것처럼 감격에 젖는다. FC 불나방은 언제나 담담하다. 승리에도, 패배에도 경기 결과를 존중하고 차분히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그저 자신들이 준비한 축구를 잘 보여주려 하고,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는 것에 집중한다. 많은 견제와 기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와 우승을 갈망하는 리그 최강의 팀. FC 불나방의 경기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누가 막나, FC 불나방 [‘골때녀’ 최애 월드컵④]
개인기로 등진 수비수를 제치는 박선영.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캡처.

‘입덕’을 부르는 순간

박선영이 우아한 턴으로 공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모두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려한 개인기와 정확한 골 감각, 예리한 패스력부터 지치지 않는 체력과 조금도 밀릴 생각 없는 전투력에 수비가담까지. 하나의 팀에서 여러 선수가 고루 나눠가져야 할 공격과 수비 능력을 박선영은 모두 갖고 있다. 상대팀이 가장 먼저 막아야 할 선수도 당연히 박선영이고, 당연히 그의 경기 컨디션에 따라 팀의 승패가 갈린다. 매 장면이 하이라이트인 그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려가기 위해) 대회가 끝나면 대한축구협회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는 FC 구척장신 최용수 감독의 농담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FC 불나방을 넘어 ‘골때녀’ 리그의 높은 수준을 확인하려면, 축구의 아름다운 마법을 맛보고 싶으면, 박선영의 발끝에 집중하자.
 
‘과몰입’ 시작하는 입구

평균 나이 최고령 멤버로 구성됐다는 설명은 FC 불나방을 이해하는 데 혼란만 더할 뿐이다. 항상 수비수 두세 명을 달고 다니는 스타플레이어 박선영부터 노력으로 부족한 실력을 끝내 극복하는 식스맨 송은영까지 FC 불나방은 다양한 멤버 구성으로 가장 축구의 기본에 충실한 팀이다. 다른 팀들이 각자의 서사를 시청자들에게 풀어내며 공감을 얻고 있다면, FC 불나방은 오직 축구에 집중한다. “다치지 말자”고 상대팀에게 인사하는 신효범과 집중 마크에 미안해하는 신봉선에게 “괜찮다”고 쿨하게 응수하는 박선영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다. FC 불나방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는 순간, 당신은 ‘과몰입’ 입구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안타깝게도 출구는 없다.

주목해야 할 선수

분명 조하나는 ‘골때녀’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 중 한 명이다. 경기 중 박선영, 신효범 만큼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는 유형도 아니다. 항상 조용히 뛰어다니고, 카메라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결정적인 순간에 매번 조하나가 등장한다. 결국 축구는 골이 말해준다는 단순한 진리에 가까이 있는 선수다. 그의 장점인 탁월한 위치선정과 골 결정력은 수많은 단점을 지우고 팀을 승리로 이끌기 좋은 능력이다. 어쩌면 ‘골때녀’에서 축구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해하고 체화한 선수가 조하나일지 모른다. 앞으로 펼쳐질 토너먼트에서 박선영만 막는 것이 옳은 전략일까. 그러다 귀신 같이 골 냄새를 맡는 조하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기회를 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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