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분만병원, 갈 곳 잃은 임산부…“가슴이 철렁했다” [사라진 분만실①]

‘산부인과 중점’ 정관일신기독병원 분만 진료 중단
갑작스런 통보에 “당장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
사라지는 분만실…2011년 777곳→2021년 481곳
“강력한 지원책 없으면 문 닫는 악순환 이어질 것”

문 닫는 분만병원, 갈 곳 잃은 임산부…“가슴이 철렁했다” [사라진 분만실①]
게티이미지뱅크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곳이 사라지고 있다. 운영해도 적자만 쌓이는 구조에 인력 부족, 법적 분쟁 리스크, 제도적 지원 부실까지. 손해와 부담을 떠안다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는다. ‘분만병원’ 이야기다. 저출산 기조에 분만 인프라까지 붕괴하며 아이를 더 낳기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의 산부인과 중점 병원인 정관일신기독병원은 지난 18일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달 분만 진료 중단과 산후조리원 이용 종료를 알렸다. 산부인과 중에서도 분만과 관련된 진료와 검사는 일체 중단하고 일부 부인과 진료만 남겨놓기로 했다.


정관일신기독병원은 분만 진료 종료 이유로 △가임 연령의 결혼관 변화 △심각한 저출산 문제 △24시간 응급진료가 필수인 산과(분만) 의료진 수급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분만을 포기하는 대신 척추·관절 질환 등 정형외과 진료를 강화하기로 했다. 병원 측은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정관일신기독병원이 분만 진료를 포기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아기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1곳밖에 남지 않았다. 출산을 코앞에 둔 일부 임산부는 다른 인근 지역의 병원으로 옮겨야 할 처지가 됐다. 갑작스런 진료 중단 통보에 임산부들은 혼란에 빠졌다. 24일 임신 16주차에 접어든 김연지(가명·31)씨는 “다음주에 2차 기형아 검사가 예정돼 있는데 갑자기 진료를 중단한다고 통보받았다”며 “당장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분만 진료 포기는 이 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차서현(가명·30)씨는 임신 37주차에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이 산과 진료를 폐지해 다른 병원을 알아봤다. 차씨는 “갑작스런 통보에 가슴이 철렁했다”며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에서 의료 인력을 구하는 게 어려워 진료를 접는단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급박한 경험을 하고 보니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됐다”며 “이런 불안한 환경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강원도 내에서 분만의료가 취약한 곳으로 꼽히는 화천군에 사는 임신 25주차 정하나(가명·28)씨는 지역 내 분만병원이 없어 걱정이 크다. 정씨는 “화천 지역 보건소에 출산 전까지 다닐 수 있는 산부인과가 있지만, 의사가 한 명밖에 없고 분만 진료는 하지 않는다”며 “새벽에 진통이 오는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구급차를 타더라도 분만이 가능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있는 춘천까지 가려면 1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전했다.

문 닫는 분만병원, 갈 곳 잃은 임산부…“가슴이 철렁했다” [사라진 분만실①]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줄어드는 분만병원, 증가하는 고위험 임산부

전국의 분만실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371곳이던 분만병원은 2011년 777곳, 2016년 565곳, 2021년 481곳으로 꾸준히 줄었다. 산부인과가 없는 전국 시군구는 20곳에 달한다.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43곳이다. 서울 용산·강북·성동구는 분만실이 있는 의료기관이 단 1곳에 불과하다. 분만 병상 수와 병실 수도 모두 감소하고 있다. 2016년 2379개소였던 병상 수는 2022년 1781개소까지 줄었다. 병실 수 역시 2016년 1414개소에서 2022년 1176개소로 감소했다. 

더불어 타 지역에서 출산하는 ‘원정 출산’이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모자보건학회지에 실린 ‘한국의 관내 분만율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48.2%였던 전국 평균 관내 분만율은 2020년 44.5%로 3.7%p 감소했다. 특히 군 지역에 거주하는 임산부는 분만병원까지 평균 24.1km를 이동해야 할 정도로 접근성이 취약했다.

분만 수가 인상 등 정부가 분만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장 의료진들은 실효성이 낮다고 짚었다. 양신호 중앙대광명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경기도 여주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재직했을 당시 지역 내 분만병원이 없어 이천시 등으로 분만 원정을 가는 환자들이 있었다”며 “임산부들이 많은 불편을 호소했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역 분만 인프라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분만 수가가 인상되긴 했지만 비과실 의료사고 배상 책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어 분만병원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분만 진료를 포기하는 산부인과 병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조금준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무너진 지역의 분만병원 인프라는 한 번 붕괴되면 다시 세우기가 어렵다”면서 “인력 구하기도 힘든데 병원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벅차다. 지역 내 분만병원을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지원책이 없다면 다시 문을 닫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대현, 김은빈 기자 sdh3698@kukinews.com

문 닫는 분만병원, 갈 곳 잃은 임산부…“가슴이 철렁했다” [사라진 분만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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