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 감성 입어요”…1980~90년대를 ‘사는’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태어나기 전 감성 입어요”…1980~90년대를 ‘사는’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지난달 3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한 빈티지샵. 사진=정세하 쿠키청년기자

# 김다윤(23·여)씨는 일주일에 4번 이상 빈티지 의류를 입는다. 저렴한데 좋아하는 감성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 빈티지 의류의 장점이다. 김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한 감성이나 추억을 옷으로 느낄 수 있는 점이 좋다”며 “좋아하는 감성의 옷을 찾아서 구매하고 입는 과정들이 특별하게 느껴져 빈티지 의류를 사 입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경험한 적 없는 1980~90년대 옷에 주목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리지널 M65 피쉬테일 파카, IPFU 자켓, 디키즈 874 바지, 조던 운동화 등 최근 유행하는 빈티지 의류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히 빈티지 스타일을 추구하는 걸 넘어, 옛날 옷에 담긴 가치를 구매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3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한 빈티지 의류 가게는 젊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1970~90년대에 출시된 다양한 빈티지 의류를 판매하는 곳이다. 친구와 함께 쇼핑하러 온 이들도, 혼자 옷 구경을 온 이들도 있었다. 노르딕 니트, 레이싱 자켓처럼 최근 유행하는 옷들의 가격을 묻기도 했다.


홍대 인근에서 빈티지 가게 1, 2호점을 운영 중이라는 정성자(63)씨는 “최근 2030세대 손님이 꽤 많이 늘어난 편”이라며 “흔하지 않은 옷을 구매할 수 있으니 많이 오는 것 같다. 특히 독특한 옷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자주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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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진씨가 직접 구매한 빈티지 옷과 신발. 독자 전어진

새로 만든 빈티지? ‘오리지널 빈티지’ 주세요

유행하는 빈티지 의류와 비슷한 스타일의 새 옷을 여러 브랜드에서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청년들은 ‘오리지널 빈티지’에 관심을 가진다.

전어진(25·남)씨는 10대였던 2018년부터 단순히 ‘멋있어서’ 빈티지 의류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둘 빈티지 옷을 사서 입는 과정에서, 최근 생산된 옷엔 없는 ‘감성’이 있다고 느꼈다. 전씨는 “빈티지 의류를 사고 공부하면서, 결국 옷에는 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며 “과거 사용하던 옷감과 부자재들이 지금의 옷과는 다르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옷의 원본을 구하려면 충분한 자금은 물론, 노력도 필요하다. 1960~70년대에 생산된 미군 군복인 ‘M65 피쉬테일 오리지널’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검색하면 500건 넘는 매물이 뜬다. 적게는 20만원, 높게는 50만 원이 넘는 가격까지 올라온다. 온전한 옷을 찾기 힘들어 내피, 외피, 모자를 따로따로 구매해 하나의 옷으로 완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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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 사이트에 500건 넘는 빈티지 의류 매물이 올라와 있다. 한 중고 거래 사이트 캡처

오리지널 빈티지는 가격도 몇 배 더 비싸다. 최근 유명인들이 입으며 유행한 ‘디키즈 874 팬츠’는 비슷한 새 제품이 출시됐다. 그럼에도 1990년대에 생산된 오리지널 디키즈 874 팬츠를 찾는 이들이 많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도 100건이 넘는 매물이 올라와 있다. 새 제품은 2~3만원에 구매할 수 있지만,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은 7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생산 방법과 원단, 부자재가 다르다는 이유로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다.

옷 자체의 품질도 다르다. M65 피쉬테일 오리지널은 최근 많이 다는 부드러운 YKK지퍼 대신, 쇠 냄새가 나는 딱딱한 지퍼를 단다. 몇백 번을 감은 튼튼한 단추의 실밥도 눈에 띈다. 전씨는 이를 “사람 냄새 나는 기술력”이라며 “1980년대엔 무엇이든 하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다들 의욕적이고 활발하던 그때와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과거 감성까지 잡는 ‘낭만 빈티지’

어글리 노르딕 니트에 통이 큰 코트, 색이 바랜 코듀로이 셔츠. 김다윤씨는 일본영화 ‘러브레터’를 연출한 이와이 슌지 감독 작품 속 여주인공이 입을 것 같은 빈티지 옷을 평소 즐겨 입는다. 자신의 취향과 잘 맞기 때문이다.

“태어나기 전 감성 입어요”…1980~90년대를 ‘사는’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영화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슌지) 스틸컷.

김씨처럼 요즘 청년들은 과거 감성을 추억하는 걸 넘어 선망하는 분위기다. 1980~90년대를 ‘낭만 있는 시대’로 평가하기도 한다. 유튜브에 ‘1990년대 한국’을 검색하면 “낭만과 사랑이 가득했던 90년대” “한국의 리즈시절” “청춘과 낭만이 꽃피던 8090” 등의 제목이 뜬다.

저렴한 가격의 빈티지 의류도 많다. 김씨는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서 빈티지가 좋다”라며 “클래식한 디자인의 폴로 랄프로렌을 가장 좋아한다. 오래전 디자인과 현재 디자인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도, 가격은 빈티지 옷이 훨씬 저럼하다”고 말했다.

이은하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청년들이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는 현상에 대해 “1980년대처럼 요즘 청년들이 경험하지 않은 시기의 옷은 독특하고 낯설어 매력적으로 이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옛날 옷을 구매하는 건 현재 쉽게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을 구매하는 것과 마찬기지”라며 “특히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주목받는 것도 구매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희소할 때 심리적으로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세하 쿠키청년기자 s2_1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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