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슬퍼하냐”…공감 못 받는 펫로스 증후군 [반려된 슬픔①]

“왜 그렇게 슬퍼하냐”…공감 못 받는 펫로스 증후군  [반려된 슬픔①]
김주연(46)씨가 키우던 반려동물 은비. 독자 김주연

# 2016년 반려뱀을 보낸 명모씨는 2년간 심리 상담을 받았다. 임종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에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지인들에게 공감받기는 어려웠다. 명씨는 “갑작스러운 반려동물의 죽음에 우울감이 심했다”라며 “‘그냥 뱀이잖아’, ‘하나 더 사’ 등의 가벼운 반응을 보인 경우도 있다”라고 토로했다.


# 건강이 악화된 반려견 초롱이를 떠나보낸 김민경(28)씨는 장례를 위해 회사에 연차 휴가를 제출했다. 장례를 치른 바로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지만, 감정이 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씨는 “최대한 감정을 감추고 일을 했지만, 한 팀원으로부터 ‘왜 그렇게 오래 슬퍼하냐’, ‘15년이면 많이 살았네’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팀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화나고 속상했다”라고 말했다.

밀리 코다로 텍사스주립대학교 교수는 2012년 10월 자신의 논문에서 펫로스를 “인정받지 못한 비애”라고 표현했다. 국내에 반려동물 문화가 정착되며 최근 펫로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비반려인들에겐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4월 반려동물과 사별한 진보경씨는 “너무 오래 슬퍼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진씨는 “갑작스러운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극심한 펫로스를 경험했다”라며 “두 달이 지나자 주변에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다른 강아지 한 마리 더 있는데 왜 자꾸 떠난 반려견을 생각하냐’ 등의 말을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반려동물을 경험한 적 없는 비반려인에게 펫로스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다. A(32)씨는 지인 집에 방문했다가 사망한 반려동물에게 인사하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친구 집에 들어가자 강아지 유골함과 발톱 등을 보관한 곳에 데려가더니 갑자기 인사하라고 해서 당황했다”라며 “반려인이 아닌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사망으로 경조 휴가를 쓰는 제도의 필요성도 공감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애니멀피플과 공공의창·한국엠바밍·웰다잉문화운동이 2021년 12월21~23일 3일간 진행한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에서 ‘반려동물 사망 때 직장이나 소속 단체는 휴가를 보장해야 할까’라는 설문에 76.3%가 ‘공감하지 못한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23.7%)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문가는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에 시각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나 비난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조지훈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 센터장은 “한 해에 버려지는 유기 동물만 수십만 마리”라며 “펫로스를 경험한 분들은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진 사람들이다. 칭찬받아야 하는데 비난받는 상황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입장에선 그저 동물일 뿐인데 왜 이렇게 슬퍼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반려인들에게 반려동물은 인생의 동반자”라고 설명했다.

“왜 그렇게 슬퍼하냐”…공감 못 받는 펫로스 증후군  [반려된 슬픔①]
명모씨의 반려뱀 스왐피. 독자 제공


펫로스 증후군 함께 극복…“핵심은 공감”

펫로스를 경험한 반려인 상당수는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 정도로 큰 슬픔을 겪는다.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지켜본 반려인 49.8%가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정운선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죽음을 경험한 137명 중 76명(55%)이 슬픔 반응 평가(ICG)에서 중등도 기준점인 25점을 초과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일반적인 사별의 수준을 넘어 지속해서 심리적인 부적응을 초래할 수준에 해당한다.

펫로스 증후군 치유를 위해 상담센터를 찾는 반려인들이 늘고 있다. 조지훈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 센터장은 “과거엔 집에서 키우던 동물이 죽었으니 울적한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다면, 최근엔 반려동물 사별을 인식하고 상담하기 위해 오는 분들이 늘고 있다”라며 “2018년 오픈한 이후 5년간 펫로스 상담 건수가 약 2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라고 밝혔다.

펫로스 모임도 확대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2022년부터 ‘펫로스 치유 모임’, 서초구는 2021년부터 ‘서리풀 무지개 모임’을 진행 중이다. 펫로스 애도 연구회는 매달 자조 모임을 열고 있다. 펫로스 치유 모임을 운영 중인 김주연씨는 “처음 반려동물을 상실했을 때는 펫로스 심리 상담 자체가 없었다”라며 “동물 카페 등을 통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슬픔을 공유하다 모임까지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네 달간 일을 멈출 정도로 극심한 펫로스를 경험했던 진보경씨는 “주변에서 공감받기 어려워 반려동물 커뮤니티를 찾았다”라며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 이야기하며 펫로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펫로스 아픔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면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다. 김윤호 상담심리코칭사는 “펫로스는 사람을 사별한 것과 같은 감정”라며 “사랑했던 만큼 아프고 슬픈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펫로스 치유의 핵심은 공감”이라며 “감정이 너무 아프고 두려워도 회피하면 안 된다. 펫로스가 6개월 이상 진행되면 일상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심리 상담이나 미술치료 등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왜 그렇게 슬퍼하냐”…공감 못 받는 펫로스 증후군  [반려된 슬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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