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는 되고 로션은 안 된다? 리필스테이션 규제 의견 팽팽 [쿠키청년기자단]

샴푸는 되고 로션은 안 된다? 리필스테이션 규제 의견 팽팽 [쿠키청년기자단]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숍 리필 스테이션. 완제품 기준 330g에 2만9000원이던 편백 샴푸를 4900원 내고 117g 구매했다. 사진=채예빈 쿠키청년기자 

오는 24일 종료하는 리필 스테이션 시범사업을 두고 사업 참여 매장과 식약처가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리필 스테이션은 대용량의 완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덜어서 사는 방식이다. 물건을 살 때 나오는 포장재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숍 리필 스테이션을 지난달 13일 이용했다. 완제품 기준 330g에 2만9000원이던 편백 샴푸를 4900원 내고 117g 구매했다. 완제품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가격이다. 이곳에서 샴푸를 샀다는 고규필(39)씨는 “리필 스테이션에서 일단 조금만 사보는 편”이라며 “써보고 잘 맞으면 다음에 많은 양을 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리필 스테이션은 샴푸나 화장품 용기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소비자 친화적이라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국내에서 화장품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할 수 있는 매장은 한정되어 있다. 화장품 소분 판매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 자격증’을 갖춘 조제 관리사가 머무는 매장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안전의약처는 지난 2021년에 자격증이 없어도 리필 화장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을 승인했다. 대신 위생·안전 교육을 받은 직원이 매장에 있어야 한다. 허가 품목은 세정용 화장품인 샴푸, 린스, 보디 클렌저, 액체비누 네 가지다. 총 7개 매장이 시범사업에 참가했다. 2022년부터 2년 동안 진행하기로 한 사업은 오는 24일 종료된다.

화장품 소분 판매에 제조와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게 환경단체와 제로웨이스트숍의 입장이다. 시범사업 도입을 주도했던 알맹상점은 리필 스테이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은 공동대표는 “현재 자격증을 가진 대표가 머물며 화장품 전 품목을 판매하는 매장과 시범사업 대상으로 세정용 화장품만 파는 매장 두 곳이 있다.”며 “두 매장 운영을 비교해 봤을 때 조제관리사 자격증은 실효성이 없다.”고 했다. 조제관리사 자격증은 피부 유형에 맞춘 화장품을 제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리필 화장품 판매와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자격증을 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단순 소분 작업에 자격증까지 필요하지 않다.”며 “안전과 위생 교육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샴푸는 되고 로션은 안 된다? 리필스테이션 규제 의견 팽팽 [쿠키청년기자단]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숍 리필 스테이션. 사진=채예빈 쿠키청년기자 

시범매장 중 하나인 보탬상점은 내년부터 리필 스테이션에서 화장품류를 빼고 세제류만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미화 보탬상점 매니저는 “조제 관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총 7회 진행된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시험의 평균 합격률은 19.6%다. 지금까지 3만1508명이 도전했지만, 합격자는 6181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합격의 문이 좁다. 김 매니저는 판매 허가 품목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리필 스테이션이 활성화된 유럽과 비교하면 한국의 규제는 엄격한 편이다. 유럽은 리필 화장품 판매에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는다. 유럽 화장품 협회에서 발표한 리필 화장품 판매 지침서에는 자격증에 관한 언급이 없다. 대신 리필 스테이션을 관리하는 직원이 안전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교육 또한 호스 청소, 용기 교체 등 화장품 소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식약처는 시범사업 제도화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품목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전에는 화장품이 썩거나 오염될 수 있어 화장품 내용을 나누어 판매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며 “2018년에 맞춤형 화장품 판매 제도가 도입되면서 자격증을 갖춘 매장만 리필 화장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규제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시범 사업에서 샴푸 등 네 가지의 세정 제품만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이들이 일시적으로 피부에 닿고 물로 씻어내기 때문에 보건 위생상 우려가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라고 품목 제한의 이유를 밝혔다.

리필 스테이션 관련 제도 도입 여부는 시범사업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식약처는 참여 매장들의 보고를 받은 뒤 조제관리사 자격증 없이도 리필 스테이션에서 화장품의 안전과 위생이 확보될 수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 필요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채예빈 쿠키청년기자 codpqls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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