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유족, 혼자 슬픔 삼킨다…자조모임 전국 2곳뿐 [자, 살자③]

청소년 자살유족, 혼자 슬픔 삼킨다…자조모임 전국 2곳뿐 [자, 살자③]
쿠키뉴스 자료사진


# 쌍둥이 형제의 자살은 A양에게 처음 겪는 ‘죽음’이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앞으로 자신을 ‘외동’이라고 할지, ‘형제가 있었지만 사망했다’고 할지 알 수 없어 사람들을 피하고 싶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힘든데, ‘네가 엄마 아빠를 잘 지켜드려야 한다’ ‘네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비수처럼 꽂혔다. 먼저 떠난 형제의 몫까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색할 수도 없다.

청소년 자살유족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혼자 아픔을 삼킨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도 없다. 전국 곳곳에 자살유족들이 모여 아픈 마음을 공유하는 자조모임이 있지만, 청소년 자살유족에겐 낯설고 먼 얘기다.

청소년 자살유족의 트라우마, 자조모임으로 극복

자살유족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희망을 찾는다. 타인과 함께 하는 경험을 통해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다. 아직 독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가족의 자살은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청소년 자살유족은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일을 혼자 또는 가족끼리만 공유하는 것에 매우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자살유족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가족 관계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유자녀는 죄책감을 갖기 쉽다”라며 “내가 뭘 잘못했나 싶다가도 화가 나는 등 혼란을 겪는다. 둘 중 한 부모가 사망한 경우, 속내를 꺼내고 싶어도 남은 부모가 겪는 어려움을 곁에서 보면서 ‘나조차 짐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표현을 못 하는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자살 대국’에서 벗어난 것엔 자살 유자녀의 역할이 컸다. 일본은 지난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자살 사망자가 3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자살률은 2003년 인구 10만명당 40.1명까지 치솟았다. 부모를 자살로 잃은 청소년·20대 유자녀가 NHK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사회에 알리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자살 유자녀들은 수기집을 내고, 거리로 나가 국민 서명을 받은 결과 2006년 자살예방법이 제정됐다. 이후 일본 자살률은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일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7.5명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자살률은 25.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청소년 자살유족, 혼자 슬픔 삼킨다…자조모임 전국 2곳뿐 [자, 살자③]
추모공원을 찾은 시민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청소년 자조모임, 전국 2곳뿐…참석도 어려워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지방자치단체 자살예방센터 등에서 72개, 민간단체 운영 9개 등 총 81개의 자조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반면 청소년 자살유족 자조모임은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수준이다.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현재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전국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 280개 중 청소년 자살유족 자조모임을 운영하는 곳은 경기 수원시, 과천시 두 곳뿐이었다. 수원시자살예방센터는 2012년부터 청소년 자살유족 자조모임을 운영해왔고, 과천시자살예방센터는 올해부터 모임 운영을 시작했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청소년 자조모임 자체가 거의 없다”라며 “수원뿐 아니라 용인, 성남, 평택 등 타 지역에서도 모임에 나온다”고 말했다. 자조모임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세상에 부모가 자살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 얘기한다고 한. 백 팀장은 “‘이곳에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아이들에겐 커다란 위로가 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자살유족은 성인보다 자조모임 참석을 어려워 한다. 보호자 동의,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살유족에 대한 낙인, 자살 생존자 모임에 대한 불안 등 주저하는 이유는 많다. 자살사별자들의 모임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미고사)’의 강명수 운영진은 “청소년은 사춘기와 맞물려 자조모임 참석이 쉽지 않다”라며 “부모님이 (모임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 때문에 가정에서 알아서 관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청소년, 청년 자살유족에 대한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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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자살예방 생명지킴이교육 시민강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자살 전염성 우려…“성인 전문가 등 모임 리더 필요”

전문가들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에게 자살이 전염될 것을 우려했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춘기 시기의 미성년자에게 부모를 (자살로) 떠나보내는 일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며 “자살 생존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살 위험이 훨씬 높다.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 집단이) 서로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나쁜 영향이 전염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고 했다.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장)도 “여럿이 모이면 자살 위험이 커진다”며 “자살유족이 모임을 구성하는 건 도움이 되지만, 만약 자살 생각이 있는 소수끼리 모이는 건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살 전염 가능성을 막으려면 성인 전문가인 집단 리더 또는 상담자가 개입,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유족)이 서로 위로하고 연결되는 경험은 중요하다”며 “다만 (청소년끼리)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모이는 건 위험할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가이드를 하고 또래 집단이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모임을 만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조기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과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고 자기주도적인 활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는 단체도 있다. 최연우 멘탈헬스코리아 대표는 “청소년·청년들은 함께하면서 더 강해진다”라며 “아이들은 (자살 등) 힘든 마음이 들 때 ‘응급실이라도 가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 너무 힘들다. 누군가 날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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