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교육 의무화?…자살예방 예산 중 고작 6% [자, 살자①]

자살예방교육 의무화?…자살예방 예산 중 고작 6% [자, 살자①]
쿠키뉴스 자료사진


내년 7월부터 의무화되는 자살예방교육 예산이 전체 자살예방 예산 중 6.1%인 31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자살률 1위 국가’ 오명을 벗기 위해 ‘10년 내 자살율 50% 감축’ ‘내년 7월 국가·공공기관·학교 등 1600만명 자살예방교육 의무화’ 등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현실은 예산과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10대 청소년 자살률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22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2019년 기준 국내 인구 10만명당 청소년(10~24세) 자살 사망자는 10.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4명의 약 1.6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률은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뛰었다. 가족, 친구, 동료 등 사랑하는 이들을 자살로 떠나보낸 유족까지 더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자살예방교육은 의무화, 예산은 ‘갸우뚱’

정부는 10년 내 자살률 50% 감축을 목표로 내년 7월부터 자살예방교육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살예방교육 및 홍보 활성화’ 예산은 지난 2021년 48억원에서 이듬해 28억원으로 반토막 났고, 올해 동결됐다.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3억원 늘어난 31억원이 됐지만, 3년 전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자살예방교육 예산이 포함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 예산은 매해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개요’에 따르면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 예산은 지난 2020년 291억원, 2021년 367억원, 지난해 451억원, 올해 488억원이었다. 내년엔 508억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 자살예방 예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자살예방 예산 488억원을 한국 인구(5171만명(추계)에 맞춰 계산하면, 인구 1인당 자살 예방에 873원이 쓰인다. 2017년 일본 자살예방 예산은 6조7033억원으로, 연간 인구 1인당 자살 예방에 5만3180원을 쓴다. 일본은 예산에 ‘인건비’가 제외돼 있으나, 한국은 포함돼 있다.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 상임이사는 “(국내 자살 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 중이지만 열악한 수준”며 “예산에 상당 부분이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라고 말했다. 그에 비해 사고·자살 등으로 부모를 잃은 자녀들을 지원하는 일본 육영회의 운영비는 10%에 불과하다.

자살예방교육 교재마저 부족한 것이 현장의 현실이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초·중학교에서 쓸 수 있는 ‘생명 존중 교재’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자살예방법 개정으로 ‘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 개선’과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지킴이 교육’ 두 개 파트가 의무교육화됐다. 하지만 둘 모두 생명 존중 교재로 활용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연구 용역 발주를 시작했다는 황 이사장은 “초·중학생을 위한 생명 존중 인식 개선과 자살 예방 교재 제작에 약 1억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살예방교육 의무화?…자살예방 예산 중 고작 6% [자, 살자①]
복지부 전경. 사진=박효상 기자


추락한 교육 예산, 자살예방 활동 발목

자살예방교육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달리, 현장에선 예산 부족으로 아쉬움만 쏟아진다. 자살예방활동가들에 따르면 자살예방교육 예산이 크게 깎이면서 운영하던 프로그램을 포기하거나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김주선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본부장은 “당연히 (자살예방은) 대면교육으로 해야 하지만, 예산이 줄면서 점점 서면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며 “자살예방교육은 종이에 몇 글자 써 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자살예방센터는 자살 예상 사업을 체계적으로 하는 유일한 국가 전달 체계이자, 자살 고위험군 발생 시 즉각 개입하는 역할을 하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백민정 수원시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아마 전국 모든 자살예방센터에 물어봐도 인력과 예산 부족을 지적할 것”이라며 “센터에서 자살 고위험군을 관리하면서 예방과 교육활동, 증진, 홍보, 유족 사업까지 전부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기 수원시는 인구가 130만명에 근접해 가지만, 자살예방센터 인력은 센터장을 제외한 상근 직원 12명뿐”이라며 “다른 지자체는 자살 예방 담당자가 1~2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군에 자살예방센터가 갖춰졌지만, 인구가 많아 100% 기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살예방교육 의무화?…자살예방 예산 중 고작 6% [자, 살자①]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자살예방교육, 아이 한 명 아닌 한 가정을 살린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자살예방교육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 기관 등에서 이뤄지는 자살예방 교육이 학생뿐 아니라 가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먼 미래를 버틸 힘을 빨리 키워주기 위해서”라며 “성장하면서 위기가 와도, 자해나 자살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40~50대 남성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근로 등 현실적으로 자살예방교육은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을 교육하면 가족에게 자살예뱡교육 내용이 건너갈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자살예방교육 책자를 부모에게 전달하거나 PPT로 교육하면 아이들이 기억해서 가정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특히 수업할 때 (자살예방상담) 전화번호를 외우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이 가족에게 그 번호 하나만 전해도 수업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교사들 역시 자살예방교육에 큰 힘을 얻는다. 김 본부장은 “교육을 마치면 교사들이 ‘어른도 상담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학생들이 수일에 한 번씩 죽겠다고 하거나, 자해하기도 해 감당하기 힘든 교사들에게 불안증이 생기고 아이들 앞에 서는 것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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