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문제 아닙니다”…그들이 마약 못 끊는 이유 [약도 없는 마약①]

마약엔 치료 ‘약’이 없다. 마약을 끊어야만 호전된다. 마약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뇌 질환이기 때문에 혼자 힘으론 재발을 막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약’도 없다. 치료·재활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국내 인프라는 열악하다. 해마다 마약 중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마약 치료 실태를 짚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의지의 문제 아닙니다”…그들이 마약 못 끊는 이유 [약도 없는 마약①]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마약을 끊은 지 5일째. 꽤 참을만 했다. 아직까진 마약에 중독된 정도는 아니구나, 안심했다.

6일째, 마약으로 느꼈던 쾌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대신 ‘지금까지 조절했으니까 언제든 또 끊을 수 있다’는 자만심이 들어섰다. 

7일째,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6일간 단약했으니, 다음에도 성공할 수 있다. 난 중독자가 아니다. 


끊임없는 합리화 끝, 남명우(28·남)씨는 1주일만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지난달 8일 경기도 양주시 ‘경기도 다르크(DARC)’에서 만난 남씨는 말했다. “의지의 문제라고요? 마약을 시작하면 중독자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도 힘듭니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중독이라는 것을 모른 채 말이죠.” 

남씨는 지난해 6월 마약을 처음 투여한 날을 기억한다.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눈이 번쩍 뜨였다. 잠도 오지 않았다. 직장동료 권유였다. 토양환경 관련 회사에서 2인 1조로 중장비를 운전하던 동료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남씨에게 말했다. “필로폰이라고, ‘비타민 주사’ 같은 거 있는데 맞아볼래? 집중도 잘 되고 통증도 많이 사라져.” 남씨의 동료는 안심이라도 시키듯 먼저 투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필로폰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마약 종류는 대마밖에 몰랐어요. 필로폰이 마약인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거예요. 동료가 먼저 맞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길래 저도 의심 없이 맞았어요.”

그 길로 남씨는 마약에 중독돼 하루 2~3차례 투약을 반복했다. 마약을 처음 권유하던 동료가 경찰에 붙잡히자,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약을 구했다. 처음 주사하던 때보다 양이 많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마약 중독에 빠져 일도 그만두고 방안에서 마약만 투여했다. 쾌락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성이 생기면서 쾌락보단 고통이 더 커졌다.

“그때부터 마약을 하면 전처럼 좋은 기분만 들지 않았어요. 고통도 함께 왔죠. 약에서 깨어나면 어두운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도 그만두고 약물에 지배된 나 자신이 싫어졌어요.”

마약에 빠진 지 6개월, 남씨는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다르크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다르크는 24시간 합숙하며 마약 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룹홈 형태의 민간 마약 중독 재활센터다. 이곳에서 남씨는 오전 7시에 일어나 오후 8시까지 빽빽하게 짜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약물중독과 싸웠다. 마약이 생각나도 함께 회복하는 동료들과 고통을 나누며 견뎠다.

그 결과 남씨는 입소 8개월 동안 단약에 성공했다. 그는 “처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약이 계속 생각났어요. 너무 하고 싶다고 선임자(3개월이 지난 입소자)에게 물으니 ‘3개월만 참으면 갈망이 많이 사라진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혼자라면 아마 8개월 동안 단약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이젠 제가 선임자가 돼서 동료들에게 약물 차단 노하우를 알려줄 정도가 됐죠”라며 웃었다.

“의지의 문제 아닙니다”…그들이 마약 못 끊는 이유 [약도 없는 마약①]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한 교회에서 열린 약물중독 자조모임 ‘압구정 NA(Narcotics Anonymous)’ 참석자들이 마약 중독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공유하고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스스로 마약을 끊기 어려워하는 건 남씨만이 아니다. 약물중독에서 회복 중인 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약물을 더는 하지 않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게 서로 돕는 자조모임을 열기도 한다. 참석자들은 모임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중독에서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스스로 수습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시인했다”라고 책자에 쓰인 문구를 함께 낭독한다.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한 교회에서 열린 약물중독 자조모임 ‘압구정 NA(Narcotics Anonymous)’에서 만난 A씨는 단약에 여러 번 실패한 과거를 털어놨다. 그의 결심은 거짓말이 됐고 거짓말은 수없이 반복됐다. 결국 가족의 신뢰를 잃었다. A씨는 “어느 날 어머니가 ‘마약을 하느니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 네가 죽으면 우리 가족이 살 것 같다’고 말했다”라고 털어놨다. A씨는 결국 다르크에 1년간 입소한 끝에 약물을 끊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식을 보지 않고 살겠다고 하던 어머니가 6개월 전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줬다”라며 “앞으로도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약류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인 인천참사랑병원에 6개월간 입원했다고 밝힌 B씨는 “한때는 약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경찰에 들킬 것도 두렵지 않을 만큼 약이 간절했다”면서 “지금은 다르크에 입소해 신앙심으로 단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C씨도 “약물에 두손 두발을 들었다. 이겨보려 했지만 ‘어나더 레벨(Another level)’이었다”면서 “절대 혼자서는 못 이겨서 포기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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