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수준 육아휴직, 있어도 “꿈도 못 꿔요” [금보다 귀한 자식④]

선진국 수준 육아휴직, 있어도 “꿈도 못 꿔요” [금보다 귀한 자식④]
그래픽=임지혜 기자


“출산·육아휴직 정책은 미국보다 한국이 더 좋아요. 한국에선 회사에서 눈치를 줘서 육아휴직을 못 쓴다고요? 왜 눈치를 주죠?” (이혜진·38·미국 조지아주)

“독일은 출산 전 6주, 출산 후 8주 시기에 일하면 안 돼요. 남성 육아휴직 2개월 할당제를 도입해 아빠도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했고요. 그래도 회사에서 눈치 보지 않아요. 대체로 육아휴직 제도에 만족하는 분위기죠.” (남수연·25·독일)

한국 출산·육아휴직 제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한국 육아휴직 기간은 현재 52주(1년)고, 내년부터는 78주(1년6개월)로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7번째로 길다. 한국 남성이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52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여기에 정부는 ‘3+3 부모육아휴직제’를 확대 개편하는 등 계속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한국 육아휴직 사용률은 남녀 모두 20개국 중 OECD 최하위다.(2020년 기준)

선진국 수준 육아휴직, 있어도 “꿈도 못 꿔요” [금보다 귀한 자식④]
그래픽=임지혜 기자


육아휴직은 개선, 사용률은 하위권


한국 출산·육아지원 정책은 미국, 유럽 등 다른 주요 국가와 비교해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에서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는 출산 전후로 총 90일(다태아 120일)이고 육아휴직은(일반 근로자 기준) 최대 1년이다. 부모가 모두 근로자면 한 자녀에 대해 부모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1.52명으로, 한국(0.78명)의 두 배에 달하는 스웨덴 육아휴직 기간은 총 480일로, 부모가 각각 240일씩 쓸 수 있다. 독일(지난해 합계출산율 1.46명) 육아휴직 기간은 부부 합산 3년(출산휴가 8주~12주 포함)이고, 뉴질랜드(2021년 합계출산율 1.64명)는 출산 후 26주간 유급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미국(2021년 합계출산율 1.7명) 육아휴직은 주마다 다르지만, 일수로 따지면 한국보다 짧다.

최근 한국 정부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바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출산휴가가 이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추진 중이란 보도가 나왔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상사 승인을 받는 절차를 없애면, 누구나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최장 1년 휴직을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취지다.

과거에 비해 육아휴직 지원은 개선되고 있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21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육아 패널티의 현실,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을 위한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에서 태어난 출생아 100명당 여성 21.4명, 남성 1.3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OECD에서 관련 통계를 비교 가능한 20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최상위권인 스웨덴에서는 여성 380명, 남성 314.1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선진국 수준 육아휴직, 있어도 “꿈도 못 꿔요” [금보다 귀한 자식④]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육아휴직 막는 회사 분위기, 정책 효과 낮춰

직장 내 육아휴직을 보는 부정적 시선과 부당한 지시는 일·가정 양립 정책으로 향하는 정부 정책을 무의미하게 한다. 쿠키뉴스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출산 인식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73.4%)이 ‘직장 등 한국 사회에서 임신·육아 가정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보통이다’는 20.1%, ‘차별이 없다’는 6.1%였다.

현재 출산휴가 중인 정모(34·여)씨는 임신했을 당시 아기를 낳은 후에도 일이 급할 때마다 한 달에 2~3번 나와서 업무를 보라는 회사 지시를 받았다. 출산 4~5개월 전부터 휴직을 요청했지만, 출산 한 달 전까지 회사는 대체인력도 구하지 않았다. 정씨는 “만삭 몸으로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정리하고, 박스를 포장했다”라며 “자진 퇴사를 유도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출산 이후 출산휴가 90일만 채우고 이번달 회사에 복직한 송모(35·여·회사원)씨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육아휴직도 쓰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못 하게 했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최모(40·회사원)씨도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꾼다”며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쓴 사례는 없다.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신고하긴 어렵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접수한 모성보호 관련 신고 처리 현황에 따르면, 그동안 신고된 1385건 가운데 기소(118건)나 과태료 부과(3건)로 처벌받은 경우는 121건으로 전체의 8.7%에 그쳤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신고하면 (회사와) 싸워야 한다. 대부분 임신부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싶어 신고하지 않는다”라며 “권리를 침해당해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돌봐야 해서 회사와 싸울 생각을 접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수준 육아휴직, 있어도 “꿈도 못 꿔요” [금보다 귀한 자식④]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계 없습니다. 사진=임형택 기자

‘부익부 빈익빈’ 해소해야…“그림의 떡”

전문가들은 한국 육아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국내 대기업·공무원과 중소기업 간의 ‘부익부 빈익빈’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유럽과 비교해) 한국 육아 정책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라며 “수당까지 합치면 스웨덴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와의 차이는 (지원받는 계층이) 폭넓다는 것”이라며 “한국은 대기업·공무원 등에서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지만, 중소기업 아래로는 어렵다. 각 회사 분위기가 휴가 제도를 사용 여부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최대 90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하는 ‘6+6 육아휴직제’를 한다고 하지만, 통상임금이 400만원 이상인 근로자에 해당하는 얘기”라며 “월급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받을 수 있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인 제도”라고 지적했다. 허 조사관은 “적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의 직장은 대기업, 공공기관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며 “고용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낮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녀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점규 위원은 “남녀 육아휴직을 최소 6개월 의무화해서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강화나 처벌 강화도 필요하겠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선진국 수준 육아휴직, 있어도 “꿈도 못 꿔요” [금보다 귀한 자식④]
Copyright @ KUKINEWS. All rights reserved.

쿠키미디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