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학원비가 152만원?…“하나만 잘 키울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③]

3세 학원비가 152만원?…“하나만 잘 키울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③]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 만 3세 이모군은 어린이집, 유치원이 아닌 놀이학교에 다닌다. 놀이학교의 한 달 정규수업비는 110만원. 주 1회 수업하는 수학학원과 미술학원 수업비는 각각 월 20만원, 10만원이다. 주 1회 수업하는 영어 센터 수업비는 12만8000원이고, 300만원이 넘는 영어 전집을 구매했고, 이군의 월평균 학원비 152만8000원를 연 단위로 환산하면 1833만6000원이다. 올해 4년제 대학 연평균 등록금 675만원의 2.7배에 달한다. 

# 맞벌이 부부인 김모(39·회사원)씨는 ‘하나만 낳아 귀하게 키운다’는 생각이다. 평일, 주말 일정을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과 사교육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웠다. 조모(38·회사원)씨도 아이의 첫돌이 지난 후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고가 영어 전집을 500만원에 구입했다. 

한명만 낳아 아낌없이 투자하자는 생각을 가진 젊은 부부들이 많아지면서, 생애 출발선 단계인 영유아 시기부터 교육·돌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심화는 박탈감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출산·양육 부담으로 이어져 저출생 위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OECD 기준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지만, 프리미엄 육아용품과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어느 때보다 활황이다. 지난 1~4월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아동 명품 매출 성장이 각각 28.5%, 25.7% 뛰었을 정도로 아동 명품 시장은 날로 성장 중이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지난 6월 기준 840곳으로 5년 만(2018년 562곳)에 1.5배 늘었다. 

3세 학원비가 152만원?…“하나만 잘 키울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③]
그래픽=임지혜 기자

육아비 부담은 저출생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의 ‘주택가격과 사교육비가 합계출산율에 미치는 영향과 기여율 추정에 관한 연구(2021)’에 따르면 2009~2020년까지 전국 16개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전년도 1인당 사교육비 1%의 증가는 합계출산율 0.0019명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은 “합계출산율 하락에 대한 각 변수의 기여율을 추정한 결과, 매매가격은 5.3%, 전세가격은 6.7%, 주택가격은 12.0%지만, 사교육비의 영향은 26.4%로 분석됐다”며 “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는 자녀 사교육에 대한 비용 감소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절반 이상의 시민이 저출생 원인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목했다. 쿠키뉴스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출산 인식 설문조사에서 54.1%가 ‘출산·육아·교육 비용 등 경제적 부담’을 저출산 원인으로 꼽았다.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14.1%) ‘개인 삶 선호 분위기’(9.5%) ‘실효성 없는 저출생 정책’(8.7%) ‘미래에 대한 두려움’(6.3%), ‘출산·육아가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4.2%), ‘필요성 없다고 느낌’(3.2%) 등이 뒤를 이었다. 

사교육 시장의 활성화는 가정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져 아이를 낳는 걸 어렵게 한다. 만 5세 아이를 키우는 최모(38)씨는 둘째 계획을 미루고 한 아이에게 더 투자해야 할지 고민이다. 9일 쿠키뉴스와 만난 최씨는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선생님이 수학학원에 다니는 친구만 수학박사라고 부른다’고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학원에 보내야 하나 싶더라”라며 “아이가 읽을 책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비싼 전집들을 사고 학원 4개씩 보내는 지인들을 보며 초조해졌다”고 말했다.

3세 학원비가 152만원?…“하나만 잘 키울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③]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3회 베페 베이비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유아용품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SNS에 올라온 육아용품, 사교육 정보를 보며 느낀 상대적 박탈감이 양육 부담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만 2세 자녀를 둔 박모(34)씨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 SNS에 아이가 다니는 영어유치원과 어학원, 영어 센터 정보가 많이 올라온다”며 “그래선지 (영어) 발화가 빠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만큼 자녀에게 많은 걸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라며 “SNS를 보면 다른 아이들은 (좋은 것을) 다 해주는 것 같은데 우리 애만 뒤떨어지는 것 같다. 이럴 바엔 하나만 낳아 투자하자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임모(39)씨도 “아이 친구들은 해외에 몇 번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해외에 데리고 나가지 못해 속상하다”며 “해외에 나가서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고 싶지만, 회사 문제도 있고 금전적인 부담도 큰 게 사실”이라고 했다. 임씨는 “SNS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명품을 입히고 좋은 걸 다 해주는 게시물이 많다”라며 “현실에서 가능한 건지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편으론 저런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사회에 드러난 부모들의 육아·교육비 부담은 출산 시기에 속하는 20~30대의 출산 인식에도 부정적인 뿌리를 내린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난 해줄 수 없을 거야’ ‘다른 사람은 이렇게 했어’ 등 타인과 비교하는 상황은 저출생 문제에 매우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SNS에 유포되는 정보나 방송에 자녀와 나오는 연예인의 모습들은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다”라며 “이런 정보는 ‘난 좋은 부모가 못 될 거야’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준다. 출산에 영향을 주는 상당히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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