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심각성엔 공감, 그래도 출산 대신 일할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②]

“저출생 심각성엔 공감, 그래도 출산 대신 일할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②]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결혼·출산은 선택이죠. 개인 삶이 존중받는 시대 아닌가요.”

매해 역대 최저를 기록한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8명까지 떨어졌다. 미혼·무자녀 부부 대다수는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엔 공감하면서도, “커리어를 잃을 바엔 출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출산 보이콧’ 현상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 남녀에게서 두드러졌다. 쿠키뉴스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출산 인식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 중 2030대 미혼 남녀(248명)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희망 출산 시기 질문에 여성 3명 중 1명(33.5%)이 ‘자녀 출산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비출산을 결심한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20대 여성 40.0%가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남성의 경우, ‘결혼 후 1~2년 후 자녀를 갖겠다’는 응답이 32.4%로 가장 많았으며, ‘자녀 출산 의향이 없다’는 의견은 14.0%였다.

동시에 청년들 역시 한국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했다. 미혼 남성 91.6%, 여성 80.7%가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출산,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하는 고난도 문제지를 부담과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택지 뒷장으로 미룬다. 결혼 후 집안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 꿈 대신 아이를 키우는 경력 단절 여성, 가족 부양을 책임지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한 아버지 모습을 생생히 지켜본 2030대에게 비출산은 혹독한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됐다.

“저출생 심각성엔 공감, 그래도 출산 대신 일할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②]
그래픽=임지혜 기자

김정훈 위드리서치 조사연구센터장은 “조사 결과 출산 보이콧 현상이 젊은 세대, 특히 비혼 여성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라며 “이는 사회·경제 변화와 함께 개인 가치관 변화가 인구 구조와 국가의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사회가 출산율 감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개인 삶의 질과 결혼·출산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고민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청년들 “생활 안정돼야 결혼·출산”

저출생 문제는 청년들이 사안의 심각성에 공감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일자리, 주거 문제, 사회적 불안감 등 청년들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결혼·출산이라는 생애주기로 넘어가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에 가깝다.

‘돈이 있어야 애도 키운다’는 전제 조건은 출산에 대한 의지를 끌어내렸다. 출산·양육비 부담은 20~30대가 뛰어넘기 힘든 높은 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8일 쿠키뉴스와 만난 김모(28·회사원)씨는 돈 때문에 결혼·출산 생각을 당분간 접기로 했다. 그는 월급날 순식간에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급여를 떠올리며 “일부라도 출산·육아 비용에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조사에 따르면 미혼 청년 절반 이상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출산·양육·교육 비용 부담’을 꼽았다. ‘개인 삶을 선호하는 분위기’ 응답은 여성이 14.9%로 남성(7.0%)보다 2배가량 높았다.

안정적인 시기를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것도 필요하다. 김모(32·회사원)씨는 “지금은 (부모세대와 달리) 취업 연령이 20대 후반, 30대로 늦어졌고, 그만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안정적인 시기도 밀렸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 연령대가 늦어졌고, 소득수준은 높아졌다. 그 결과 결혼과 출산 외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저출생 심각성엔 공감, 그래도 출산 대신 일할래요” [금보다 귀한 자식②]
2023 이화 잡 페어. 사진=임형택 기자

시간과 경력 등 출산과 육아를 위해 뭔가 희생해야 하는 점도 청년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박모(29·회사원)씨는 “‘아이는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출산·육아는 자신의 커리어를 내려놓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로 아이를 양육하는 전업주부가 되기에는 비용이 큰 문제”라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을 위한 맞춤 정책으로 저출산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출산 인식이 많이 다르다”라며 “현재 정책은 청년 전체를 대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앞으로는 결혼·출산을 한 청년과 결혼·출산 의향이 있는 청년, 의향이 없는 청년으로 구분해 생애주기별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제도 변화와 함께 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가치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 30대 중반 비혼주의 전문직 여성과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어요. 그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경제력이 높아지고 연인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는 인식 변화가 이뤄졌다고 해요. 이처럼 청년들에겐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보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크다고 생각해요. 출산·육아 인식과 제도 변화가 함께 필요한 이유죠.”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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