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밖에 못 살렸어요”…다시 이태원을 걷다 [10·29 그리고 1년]

“한 명밖에 못 살렸어요”…다시 이태원을 걷다 [10·29 그리고 1년]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전광판에 이태원 참사 애도 문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1년 전 이태원엔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구조자가 있었다. 참혹했던 현장 속에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던 사람들. 그 중 한 명이 쿠키뉴스의 인터뷰 요청에 힘겹게 용기를 냈다. 1년 만에 다시 이태원을 걸었다. 잊고 지낸 그날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아직도 음악 소리가 들린다

“여기에 다시 올 줄은 몰랐네요.” 지난 27일 오후 7시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난 이승현(26)씨의 첫마디였다. 역에서 나오자 ‘10.29 핼러윈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문구가 전광판에서 나오고 있었다. 경찰들과 노란 조끼를 입은 용산구청 직원들이 거리를 바쁘게 오갔다. 금요일 밤이지만 길거리 분위기는 차분했다. 핼러윈 장식물은 보이지 않았다.

출구에서 몇 걸음 걷자,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닿았다. 이태원 중심가 대로 한복판이었다. 해밀턴 호텔 외벽엔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조심스레 맥주를 두고 가는 시민, 주저앉아 흐느끼는 청년, 포스트잇 앞에 서서 묵념하는 외국인 등 대부분 시민은 골목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함께 골목을 오르던 이씨는 “마음이 안 좋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태원에 온 건 그날 이후 처음이다. 비명과 음악이 뒤섞인 그날의 소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아비규환, 그 속에서 울리던 클럽 음악 소리.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환청처럼 들린다.

“한 명밖에 못 살렸어요”…다시 이태원을 걷다 [10·29 그리고 1년]
지난 27일 이승현(26)가 1년 만에 다시 걸은 참사 현장. 사진=이예솔 기자


사람을 살렸다, 살리지 못했다

1년 전 이씨는 어느 바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참사 현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오후 11시쯤 경찰이 찾아와 “근처에 사고가 났으니 귀가하라”고 말하기 전까진 그랬다. 이씨는 자정 무렵이 돼서야 참사 현장을 마주했다.

현실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건 발생 초기, 구조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씨는 망설임 없이 소방관과 함께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다. 그는 “힘이 좋은 편이라 깔린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학창 시절 합기도 선수였던 이씨는 키 185㎝가 넘는 거구다. 하지만 “성인 남자 셋이 힘을 합쳤지만, 한 명도 못 빼냈다”라고 했다. 그날 밤은 날씨가 꽤 추운 편이었지만,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그날 이씨가 심폐소생술을 해서 한 여성의 호흡을 돌아왔다.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언젠가 사람을 구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전에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땄다”고 그는 말했다. 그럼에도 한 명밖에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죄처럼 느껴진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한 명밖에 못 살렸어요”…다시 이태원을 걷다 [10·29 그리고 1년]
지난 27일 오후 이태원 골목 곳곳에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사진=이예솔 기자


난 잘못하지 않았다 

“너는 영웅 놀이 하겠다고 자격증까지 따놓고, 왜 더 많이 못 살렸냐.” 참사 이후 이씨가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 SNS와 유튜브 등 온라인에선 “질서 안 지키고 논 걸 누구 탓하냐”는 악성 댓글들이 달렸다. 생존자와 희생자, 그날 그곳에서 구조자들까지 비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수많은 글들은 남은 이들을 더 바닥으로 짓눌렀다.

이씨는 “비난의 화살이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참사와 관련된 이들을 비난하는 글을 볼 때마다 허탈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비난하는 말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그는 “떳떳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잘못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한 후 다시 입을 닫았다.

결국 5분 만에 그 골목을 벗어나야 했다. 이씨는 “많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 힘들어요”라며 말을 더듬었다. 그는 참사 이후 3개월간 상담 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반년 동안 사람 많은 곳에 가지도, 대중교통을 타지도 못했다. 그는 “참사 이후 일주일은 지금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멍하니 지냈어요”라며 “(아직 나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씨는 생존자와 구조자들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 꼭 살아달라는 얘기였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많이 힘들고 죄책감도 들겠지만, 그 사람 몫까지 살아주세요.”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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