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야? 혹시 이태원이야? 괜찮은 거지?” [10·29 그리고 1년]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 부모님의 걱정. 친구들의 생존 확인. 사람 많은 곳엔 가지 말란 얘기. 그날의 기억은 각자 다르지만, 사실 같은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마치 그곳에 있었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어쩌면 그곳에 있었을지 모를 청년들에게 2022년 10월29일의 기억을 물었습니다. 그날 밤의 기억, 그날 이후 달라진 일상, 어쩌면 평범한 날일 수 있었을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그날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요.
(인터뷰한 청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기재했습니다)

“지금 어디야? 혹시 이태원이야? 괜찮은 거지?” [10·29 그리고 1년]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을 구급차가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사진=최은희 기자

그날 밤

“그날 밤, 사람들이 다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나니까 오후 11시쯤이더라. 나가려고 일어섰는데 ‘마약 한 거 아니야? 말도 안 돼’ 이런 말도 들리고. ‘어, 뭐지’ 하는데 영화를 같이 본 사람들이 갑자기 모자이크 안 된 영상을 보여줬어. 엄마에게 전화가 3~4통 와 있었어. 바로 전화하니까 “너 안 갔지”라고 물으시더라고. 그날 용산에서 한강을 따라 2시간을 걸어서 집에 왔어. 평소였으면 대중교통을 탔을 텐데 꺼려지더라고. 사람들이 다 그 얘기만 하고 있었어.” (노을‧26‧취업준비생)


“그날 밤, 소름이 돋았어. 원래 그날 이태원에 가려고 했거든. ‘너 지금 괜찮지? 집이야?’ 묻는 연락이 계속 왔어. 친구들에게 그날 이태원에 간다고 말하고 다녔으니까. 연락이 올 때마다 열심히 설명했지. 회사 일정 때문에 난 안 갔다고. 나도 똑같이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괜찮은지 물어봤어.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소식을 부모님과 뉴스로 보면서도 안 믿기는 거야. 다른 사고도 아니고 압사 사고가 가능한 건가 싶어서.” (은하‧26)

“그날 밤, SNS와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 ‘다섯 명 정도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었어. 사고 소식을 찾아보면서 사고 현장 영상도 계속 봤어. 속보도 바로 확인했고. 그렇게 새벽 3시 넘어서 150명 정도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어. 그날은 아예 잠을 못 잤어. 당황했고 놀라기도 했고. 사람들이 모인 모바일 메신저 대화방마다 돌아다니며 연락했거든. 대화방 안에 있는 사람 중 혹시 누가 이태원에 있었을지 모르니까.” (지광‧29‧활동가)

“그날 밤, 친구가 사진을 보내줬어. ‘이태원에서 사람이 100명 가까이 죽었대’라면서. SNS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사진을 봤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더라. 분장한 여자분들이 돌아가신 상태로 심폐소생술을 받는 사진도 봤어. 충격이었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 건 전쟁이나 자연재해 아니면 접하기 어렵잖아. 연인과 친구들에게 계속 연락했어. 강남과 홍대에 친구들이 많이 갔는데, 그쪽도 사람이 많았으니까.” (새은·25)

“그날 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어. 취업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집에 와서 TV를 틀었더니, 평소와 다르게 뉴스가 긴박한 거야. 처음엔 이태원에서 사람이 사망했다고만 했는데, 계속 보니까 피해 규모가 심상치 않은 거지. 축제와 참사는 안 어울리는 말이잖아. 그런데 그 두 단어가 계속 같이 나왔어.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니까 다들 내 말을 안 믿었어. 그럴만해. 이태원에서 압사로 사람이 죽는다는 게 쉽게 이해되는 일은 아니니까.” (민서‧27‧직장인)

“지금 어디야? 혹시 이태원이야? 괜찮은 거지?” [10·29 그리고 1년]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사진=조유정 기자

그날 이후

“그날 이후, 이태원은 안 가고 있어. 아직도 그날 이태원역에서 웃으며 내린 사람들이 생각나. 그때 이태원역에서 내린 후 다른 곳에 가지 않았으면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 있었을 텐데.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이 죽을 줄은 몰랐어. 출퇴근하며 6호선 이태원역을 지나갈 때마다 생각이 나. 이태원 근처에서 약속이 생겨도 사고가 난 출구는 안 보려고 해. 올해까진 마음이 힘들 것 같아서 내년이나 내후년 핼러윈부터 친구들이랑 다시 즐기려고. 핼러윈이라 그 일이 벌어진 건 아니니까.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이 잘 세워졌으면 좋겠어. 그러고 나서 다시 그날을 보냈으면 해.” (새은·25)

"그날 이후, 이태원에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고맙다고 했어. 부모님은 서울에 간다고 하면 ‘좁은 골목 가지 마’ ‘사람 많은 곳 가지 마’라고 계속 당부하셔. 나도 사람 많은 곳은 피하게 되더라.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어. 시간이 좀 흐르고 콘서트에 갔는데 입구가 좁았거든. 예전 같으면 빨리 나가고 싶어서 질서를 안 지켰을 텐데, 이젠 무조건 줄을 서야 할 것 같더라. ‘천천히 나가야지’ 생각하면서. 이전과 같은 날을 보낼 수 있을까. 사람 많은 곳을 가면 괜히 불안하기도 하고 주위 시선도 좀 그렇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놀러 가냐’ 같은 시선 말이야. 너무 슬프고 힘들었는데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조금 잊히기도 했어. 한동안 별생각 없다가, 요즘 기사들이 뜨면서 ‘잊으면 안 되겠다’고 다시 생각했어.” (은하‧26)

“그날 이후, 달라졌어. 습관까진 아닌데, 대중교통에 사람이 많아도 출퇴근길이거나 급하면 끼어서 타고 그랬거든. 이제는 사람이 많다 싶으면 안 타. 만약 조금 붐비는 곳에 타게 되면, 손을 가슴 쪽으로 모아. 그러면 숨 쉴 공간이 확보된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대처법을 알고 안전한 공간 확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준영‧29‧웹툰 작가 지망생)

“그날 이후, 한동안 밥을 잘 못 먹었어. 사람 많은 곳도 두렵더라. 혹시 또 어디서 사고가 벌어지지 않을까 마음 졸이기도 하고. 이태원이란 공간 자체가 너무나 일상적인 곳이잖아. 그런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고, 사고가 벌어진 골목도 익숙하게 지나다니는 골목이고. 그날 사람들도 그래서 갔던 것 아닐까. 지금도 핼러윈이나, 이태원을 생각하면 오묘한 기분이야. 이젠 불꽃 축제 같은 행사엔 못 갈 거 같아.” (지광‧29‧활동가)

“그날 이후, ‘나도 거기 있을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 그날 봤던 영상이 떠오르고, 사건에 대한 묘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에. 그날 느낀 감정을 친구들한테 많이 얘기했어. 그게 애도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 원래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안 좋아해. 핼러윈을 즐긴 적도 없고. 그래도 이태원은 자주 갔어. 그날로부터 일주일 전에도 갔다 왔거든. 지금도 가끔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해. 1년의 시간 동안 평범한 곳이 평범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노을‧26‧취업준비생)

“지금 어디야? 혹시 이태원이야? 괜찮은 거지?” [10·29 그리고 1년]
지난해 11월2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추모 거리를 한 청년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그날 

“그날, 친구와 이태원에 놀러 가기로 했었어. 핼러윈 파티를 챙겨본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이태원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거든. 의상까지 준비하진 않았고, 생활용품점에서 간단하게 악마 모양 헤어밴드를 사려고 했어. 오랜만에 이태원에 가는 거라 사람들이 분장한 것도 구경하고 젊음의 거리도 즐겨보고 싶었지. 그런데 그 전날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일요일에 출근하게 된 거야.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못 간다고, 미안하다고 말했지. 친구가 짜증을 내더라. 미안했지. 그날만 기다렸는데 못 가게 됐으니까.” (은하‧26)

“그날, 정확히 그 시간에 그 장소로 가려고 했었어. 30~40만원을 들이는 건 아니어도, 핼러윈을 맞아서 짱구로 분장하려고 준비했거든. 검은색 종이를 잘라서 눈썹도 만들고, 옷도 다 주문했지. 그런데 애인이 코로나19에 걸려서 갈 수 없었어. 같이 격리하며 보드게임을 했던 기억이 나.” (지광‧29‧활동가)

“그날,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어.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연인과 데이트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핼러윈 데이를 즐기진 않았어. 원래 챙기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연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평소처럼 대화하고. 그렇게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재민·28)

“그날, 이태원역에서 내리는 사람들 표정이 진짜 밝아 보였어. 그날 연인과 데이트를 하다가 오후 9시 전에 망원역에서 헤어져 6호선을 타고 집에 가고 있었거든. 이태원역을 지나가면서 붕대를 감은 분장을 한 사람들을 봤어. 예전에 나도 ‘말괄량이 소녀 삐삐’ 분장을 하고 이태원으로 향했던 기억이 나서 덩달아 기분 좋아지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내일 어떤 식으로 코스튬 파티를 꾸미고 놀지 친구들과 얘기한 기억이 나.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재밌겠다고 생각했어.” (새은·25)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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