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고기능 휠체어, 기술력은 충분한데…“지원체계 분산” [걷지 않아도③]

식약처, 고기능 휠체어 제품화 지원
경제적 여유 없는 중증장애인에겐 ‘뜬구름’
“제도적 지원은 물론 연구 개발에 대한 체계 없어”
보조기기 지원사업 통합 및 제품 양산 생태계 조성 필요성 제기

K-고기능 휠체어, 기술력은 충분한데…“지원체계 분산” [걷지 않아도③]
보건복지부의 경우 저소득층,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정해진 품목의 보조기기를 지원한다. 소득 기준이 충족되지 않으면 민간 사업이나 기관 대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관계자는 “수동휠체어에 모터가 달린 하이브리드 휠체어도 현 지원책으론 구입이 어렵고,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 범위에 비해 수요가 더 많다”고 말했다. 사진=박선혜 기자

최근 서고 눕고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퍼스널 모빌리티(PM) 기술을 입힌 첨단 휠체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제품의 기능은 단순히 이동 편의를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이용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높은 가격에 접근성은 떨어지고,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의 일상은 여전히 고달프다. 신체장애는 일상의 장애로 이어져야 하는 걸까. 진화하는 휠체어 기술을 보편적으로 누릴 순 없을까. 휠체어를 중심으로 보조기기의 기능성이 장애인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들여다본다. 국내 보조기기 지원 방향과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도 살핀다. [편집자주] 

정부는 올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동식 휠체어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같은 지원 계획에도 회의적인 반응은 가라앉지 않는다. 개발을 해 제품이 나와도 가격 부담이 커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수요자가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지털 기반 혁신 제품 개발에 필요한 정책적·행정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고기능 전동휠체어의 제품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음성 인식, 수중·계단·험지 주행이 가능한 기능성 휠체어 등 17개 신제품에 대한 맞춤형 신속 분류 품목을 지정·공고하고 올해 12월 개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 기술을 탑재한 국산 고기능 휠체어의 신속한 시장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장애인에게 유용한 기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휠체어를 비롯한 보조기기 연구와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문기관에선 국산 고기능 휠체어를 상용화하려면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짚는다. 

강인학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장은 “정부의 취지는 좋지만 지난 20년 동안 국산 고기능 휠체어를 개발해 상용화한 사례는 전무하다”며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 원장은 “일부 경제적 여력이 있는 장애인들은 고가의 외국 유명 제품을 쓴다”면서 “여력이 없는 대다수의 중증장애인들은 고기능 휠체어를 가질 방법이 없다. 제도적 지원은 물론 연구 개발에 대한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센터가 조사한 국내 보조기기 공적급여 현황에 따르면 정부의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훈처,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민간지원사업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업이 퍼져있는 만큼 부처별 해당 예산은 제한적이다.

부처마다 지원하는 금액과 대상도 달라 수요자 입장에선 어디에서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 할지 정보를 알기 어렵다. 부처 간 지원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연계되는 것도 아니다. 중복 지원 사례 등을 걸러내기 힘든 상황이다. 부처들이 차별화를 두지 않고 같은 종류의 휠체어 연구 개발을 하더라도 제재할 방도가 없으며, 연구비 예산을 각각 얼마나 책정했는지 공유되지 않고 있다. 

강 센터장은 “부처들은 개별적 전달망을 갖고 있어 크로스 체크가 전혀 되지 않는다”며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한 곳에서 관할하고 데이터를 평가·분석해야 한다. 예산 배분을 효율적으로 가져가면 고기능 휠체어 지원도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리가 안 되다보니 연구개발 단계에 그친 채 상용화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제품들이 적지 않다”면서 “고기능 휠체어 개발이 성공하려면 결국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짚었다. 

강 센터장은 “휠체어 같은 보조기기는 비싼 돈을 들여 개발해도 수요자가 한정돼 해외로 나가야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국가의 공적급여 정책이 얼마나 유연성을 갖는지에 따라 산업 성장이 좌우된다. 스웨덴처럼 장애인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휠체어가 정책 지원 품목으로 들어가야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고 글로벌 진출도 이어진다”고 제언했다. 

K-고기능 휠체어, 기술력은 충분한데…“지원체계 분산” [걷지 않아도③]
휠체어 사용자인 박동현 하이코어 대표는 “우리나라에선 안전성을 높인 휠체어가 최고의 제품이다. 도로, 공간 여건에 상관없이 방향 조절이 가능하면서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가는 튼튼한 제품이 필요하다. 물론 가격면에서도 부담이 덜한 제품이어야 한다. 기술력은 확보됐다. 담당 부처 간 협력만 이뤄지면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하이코어 제공


산업계에서도 제품의 실질적 양산을 고대하고 있다. 박동현 하이코어 대표는 “수요자의 선택지는 저가형 중국 제품과 고가형 미국 제품 사이에 놓여있다”면서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선 비싸서 못 쓰는 고기능 휠체어가 아닌 접근이 용이한 기능성 휠체어 개발이 우선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행정적·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코어는 식약처와 협력해 최근 동력 보조장치를 개발했다. 하이코어가 제작한 모터형 바퀴는 기존 수동 휠체어에 적용할 수 있으며, 충돌을 대비한 제어도 가능하다. 박 대표는 “국내 기술력은 이미 일본, 미국 등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했다”며 “개발만 하는 나라에서 벗어나 양산을 이어가고 시장 생태계가 잡힐 수 있도록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부처마다 다른 지원 예산 집행 기준이 보완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보조기기 지원 부처를 통합하는 게 어렵다면 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박 대표는 “최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장애인이동편의증진특별위원회 회의에서 1·2급 장애인에게 부처와 관계없이 개별화된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면서 “지원책도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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