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해주세요” “환불은 안 돼요”…웨딩박람회의 두 얼굴 [요즘 신혼부부⑩]

“계약해주세요” “환불은 안 돼요”…웨딩박람회의 두 얼굴 [요즘 신혼부부⑩]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웨딩박람회장 모습. 

# 지난해 결혼한 심모(28)씨는 2년 전 A 스튜디오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이때 낸 계약금은 100만원.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용이 비싼 것처럼 느껴졌다. 심씨는 계약한 지 5일 후 다른 스튜디오로 촬영을 원한다며 취소 요청을 했지만, 업체는 환불을 거부했다. ‘계약서상 취소‧양도 불가’를 고지했다는 이유에서다. 심씨는 소비자보호원에도 신고했지만, 업체와 협의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계약금을 2년째 돌려받지 못했다. 지금은 반포기 상태다.


일부 웨딩 업체들이 예비부부들에게 계약금을 요구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취소·환불을 거부하거나 과다한 위약금을 청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계약할 땐 나중에 취소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론 환불받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웨딩컨설팅 업체에서 주최하는 ‘웨딩박람회’에서 특히 많은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웨딩박람회는 예비부부들이 웨딩홀부터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한복, 예물 등 결혼에 필요한 품목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용하다. 웨딩박람회는 주로 주말에 열린다. 오는 28~29일엔 서울, 경기, 부산, 제주 등 전국 31곳에서 웨딩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성황이다. 매주 주말마다 웨딩박람회를 여는 웨딩컨설팅 업체도 존재한다.

웨딩박람회에서 소정의 계약금을 내도록 유도당한 후 환불 거부나 현금 대신 상품으로 돌려주는 등 피해가 특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1~4월까지 접수된 결혼 준비 대행 서비스 관련 피해구제신청은 361건이다. 이중 결혼박람회 등 사업자의 영업장소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진 ‘방문판매’ 계약은 135건(37.4%)로 나타났다. 신청 이유는 ‘계약해제 거부 및 과다한 위약금 청구’가 224건(62.1%)으로 가장 많았고 ‘청약 철회 거부’ 68건(18.8건), ‘계약불이행’ 46건(12.7%)가 뒤를 이었다.

“계약해주세요” “환불은 안 돼요”…웨딩박람회의 두 얼굴 [요즘 신혼부부⑩]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웨딩박람회장 모습. 

계약을 취소하고 싶어서 얘기해도, 환불은 쉽지 않다. 내년 가을 결혼을 준비 중인 B씨는 웨딩박람회에서 덜컥 계약한 일이 소비자보호원 접수까지 이어졌다. B씨는 “플래너를 통한 스드메 비용이 저렴해 별생각 없이 계약금 30만원을 지불했다”라며 “원하는 스드메 업체가 아닌 다른 곳으로 선택을 유도하는 등 불편함을 느꼈고, 계약 이후 예약 등 진전이 없어 7일째에 해지를 요구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환불 요구 거부 후 연락을 피해 결국 소비자보호원에 접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계약 피해 위험을 모른 채 웨딩박람회에 갔다가 계약하고 나오는 사례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결혼한 박모(31)씨는 웨딩박람회를 찾았다가 한순간에 웨딩플래너, 스드메, 웨딩링, 피부마사지, 예복을 계약했다. 처음부터 계약할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다. 박씨는 “나도 모르게 계약하고 나왔다”며 “박람회장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쉴 틈 없이 이곳저곳 업체에 끌려다녔다”고 말했다. 웨딩플래너 계약 시 끝나기도 전에 예물(결혼반지)업체에 끌려가고 보고 있으면 또 한복, 마사지 등 업체에서 끌려가는 식이었다.

웨딩업체들은 ‘최저가 할인’과 ‘선물 지급’ 등으로 예비부부들의 계약을 유도하는 식이다. 웨딩박람회를 찾았다가 2시간 만에 스드메, 한복, 예복 계약을 마친 강수빈(가명‧28)씨는 “박람회장은 계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괜찮은 거 같다고 하면 사인을 하게 하고, 또 다른 품목을 고르게 한다. 정신 차려 보면 모든 계약이 끝나고 선물까지 받아 환불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라고 토로했다. 내년 결혼을 목표로 준비 중인 C씨도 ‘당일 계약 시 15만원 할인’ 혜택에 혹해 웨딩박람회에서 플래너 업체에 40만원을 내고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일주일 안에 환불 가능하다고 들어서 3일 후 계약 취소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환불받긴 쉽지않았다”라고 한숨 쉬었다.

“계약해주세요” “환불은 안 돼요”…웨딩박람회의 두 얼굴 [요즘 신혼부부⑩]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웨딩박람회에서 예비 신혼부부들이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웨딩박람회의 계약 취소 거부와 알리지 않는 행위는 법률상 위반에 속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웨딩박람회의 경우 방문판매에 속하는데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4일 이내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들이 계약서상 ‘환불 불가’라는 조항을 넣는데 법률상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밝혔다. 문건일 법무법인 일로 변호사도 “방문판매법 7조에 따라 사업자는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라며 “법에 따라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간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만일 웨딩관련 업체가 환불과 계약 취소를 거부할 경우, 취소 의사를 명백히 밝힌 뒤 증거를 가지고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구제 신청을 하면 된다”라며 “신청 후 양측 협의를 돕게 되는데 만일 이때 협의가 안 되면 소비자분쟁위원회에서 조정을 하거나 민사 소송을 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절반 정도는 합의로 해결을 하지만 사업자가 법적으로 잘못해도 처리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문 변호사는 “계약을 취소한다는 문자나 메일 등의 증거를 남겨두면 협의 등에 도움이 된다”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관련 업체에 대한 민원 제기가 가능하다”라고 조언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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