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여지책에 애타는 주민들…“‘응급신호 감지’ 체계 시급” [섬마을 의료 고립③]

도서·산간 주민, 보건진료전담공무원 1847명에 의지
전남 완도·신안군, 인천 옹진군 등 ‘A등급 분만취약지’
‘병원선 3법’ 등 관련 법안 논의 지지부진
“지역 보건의료 담당 공무원 배정해 주치의제 도입해야”
지자체·정부 노력 중요…“전담 의료기관 연계체계 구축”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섬을 갖고 있단 사실을 아시나요? 인천만 하더라도 40개의 유인도와 128개의 무인도가 있습니다. 인천 섬마을의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평균 31%로, 인천 평균(15%)의 2배를 웃돕니다. 하지만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를 제외하면 병원이라곤 인천의료원이 운영하는 백령병원 1곳뿐입니다. 아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진료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병이 커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지리적 특성 등으로 인해 건강관리가 취약한 도서지역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또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궁여지책에 애타는 주민들…“‘응급신호 감지’ 체계 시급” [섬마을 의료 고립③]
지난 6일 인천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 마을회관에서 한 어르신이 무료진료를 나온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암검진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놓인 도서 지역 주민들이 건강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들의 건강권을 보장할 뾰족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의료진이 한 달에 한 번 섬을 찾는 무료진료나 병원선 그리고 응급의료 전용 헬기인 닥터헬기마저 궁여지책일 뿐이다. 도서 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의사가 없는 도서·산간 지역에서 의사 대신 의료 행위를 하는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은 1847명에 달한다. 지난 6일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소재 승봉도에서 기자와 만난 승봉보건진료소장 역시 간호사 출신의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이다. 의사가 아니다.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은 의사가 없는 의료취약 지역의 보건진료소에서 주민들을 진료하고 의약품을 처방하는 등 일차적인 보건의료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이다.

도서 지역에 의사가 없는 건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라남도의 도서 지역도 보건진료전담공무원에게 의존하는 상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보건진료전담공무원 1847명 중 313명(17%)이 전남에서 근무한다. 전남엔 닥터헬기로 이송된 임신부도 많다. 최근 5년간(2019년 1월~2023년 6월) 닥터헬기로 이송된 임신부 9명 중 6명이 전남 섬 지역에 거주하는 임신부였다. 전남 완도·신안군, 인천 옹진군(백령도), 강원 평창군 등은 보건복지부 지정 A등급 분만취약지로 분류된다. 

A등급 분만취약지란 60분 내로 분만실로 이동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이 30% 미만이면서, 60분 안에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에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지역이다. 복지부는 이들 지역에 산부인과 장비비,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들 임신부들은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없는 농어촌 등 도서 지역 거주자로 갑작스런 산통 등으로 응급분만이 필요한 상태였다”라며 “정부는 2011년부터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을 하고 있으나, 농어촌과 섬 지역 등 분만취약지 인프라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 격차 해결을 위해선 의료취약지의 의료 인력과 진료 인프라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병원선의 법적 지위와 운영 근거를 명확히 하고 병원선을 요양기관에 포함시키는 내용 등을 담은 ‘병원선 3법(지역보건법·국민건강보험법·건강검진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보건진료소 말곤 사실상 병원선이 섬 지역의 유일한 의료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선을 운영·지원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복지부 훈령과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병원선 3법을 통해 의료취약지인 섬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진척이 없다. 비슷한 내용의 병원선 3법 발의는 이전에도 있었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지난 2019년 20대 국회의원을 지냈을 당시 병원선 3법을 발의한 바 있다.

이렇다 할 대안 없이 시간만 흐르고 주민들의 불편과 고통은 쌓여간다. 지난 6일 기자를 마주한 승봉도 토박이인 항무인(86) 씨는 “몇 년 전에 백내장 때문에 수술한 눈이 최근 들어 다시 침침해졌다”라며 “보건진료소에선 진통제나 혈압약만 타먹지 전문적인 진료는 힘들다. 섬 밖의 안과병원까지 가려면 불편한 게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궁여지책에 애타는 주민들…“‘응급신호 감지’ 체계 시급” [섬마을 의료 고립③]
서재덕 가천대 길병원 교수가 6일 인천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에서 한 어르신의 무릎 상태를 살피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전문가들은 환자의 작은 병을 방치해 큰 병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한 공공보건의료 관리 체계가 시급히 확립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을 맡고 있는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보건의료 문제를 민간의료가 아닌 공공의료 영역에서 돌본다. 지역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담당 공무원을 배정하고, 환자를 병원과 의료인에게 연결시키는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라며 “환자를 꼼꼼하게 챙기는 역할은 곧 담당 공무원에게 달렸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도 행정(지자체)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라고 짚었다.

지역 내 의료인의 순회 파견근무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도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전용 공공병원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배는 기상환경이 좋지 않으면 뜨지 못하고, 닥터헬기도 해가 지면 날지 못한다. 공보의는 줄어들고 섬에서 근무하지 않으려 한다. 저마다 한계가 뚜렷하다”면서 “관내 거점 의료기관 의료진이 한 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주민들을 살핀다면 건강 상태 파악이 용이하고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의료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순 없다. 지자체와 정부의 뒷받침이 중요하다. 인천시는 7개 면 단위 섬을 인천 관내 종합병원이 1개씩 맡아 주기적으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1섬 1주치병원 도서 지역 무료진료 사업’을 확대·강화할 계획이다. 인천시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향후 1섬 1주치병원 사업 만족도 조사를 바탕으로 시·군·의료기관 담당자로 구성된 실무협의회를 구성하고, 무료진료 횟수를 늘리는 등 섬 지역에 대한 의료서비스 혜택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며 “사업의 고도화를 위해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을 추가로 선정해 도서 지역 전담 의료기관 연계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시는 △보건지소(진료소) 신·중축 △노후화 된 의료장비 교체 △건강관리 등 예방 중심의 지역 의료기관 기능 보강 △병원선 수리 및 의료장비 지원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의료취약지 원격협진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 관계자는 “보건진료소 간호사가 어르신을 찾아가 화상장비를 활용해 공보의나 민간병원 의사의 진료·처방을 받게 하는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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