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는 거들 뿐”…지역 주민이 관광 살린다 [지방 소생 보고서④]

日 지방 관광, 정부 지원 속 주민 주도 개발
韓 전문가들 “인기 관광지 따라하기, 공공 중심 고질적 문제”

국내 관광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죽어가는 지역을 살리는 중요한 열쇠가 됐습니다. 지방 관광의 민낯을 내국인과 외국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짚어봤습니다. [편집자주]

“지자체는 거들 뿐”…지역 주민이 관광 살린다 [지방 소생 보고서④]
일본 후쿠오카현 다자이후 텐만구를 찾은 관광객 모습. 사진=임지혜 기자

일본 야마나시현은 최근 일본에서 가장 인기 많은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산골마을 고스게촌 내 전통 가옥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 ‘대박’을 쳤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발간된 지방 재생 비결을 담은 책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의 배경이기도 하다.

고스게촌 사례는 세계 각국이 관광객 유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찾는 단적인 예다. 지난 12일 일본 NHK는 “중동·아프리카 등 12개국 관광 담당자들이 일본 야마나시현청을 방문해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역 자원 활용, 정보 발신 방법 등을 배웠다”고 보도했다.

일본 관광,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일본은 2014년 정부 차원에서 관광 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아베 총리 직속으로 ‘마을 사람 일자리 창생본부(지방상생본부)’를 신설하고 적극 지원에 나섰다. 주민들이 적극적인 개발 의지를 보인 지역은 큰 효과를 봤다. 대표적인 지역이 일본 야마나시현이다.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었다. 2014년 당시 야마나시현 고스게촌은 지자체가 만든 휴게소 개소를 앞두고 있었다.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농촌과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야채로 만든 이탈리아식 화덕 피자가 관심을 받았지만, 관광객들은 잘 곳 없는 시골 마을에서 몇 시간 머물다 떠났다.

주민들과 컨설팅 회사는 무심코 방문했다가 잠시 머물고, 머물다 정이 들어 살게 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들기로 했다. 주민들은 마을 호텔 주인이 됐고, 오래된 전통 가옥들을 개보수해 객실로 사용했다. 기존 동네 식당과 카페는 부대시설로 이용했다.

주민들의 전략은 통했다. 고스게촌을 방문한 관광객은 2014년 8만명에서 2018년 18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1박에 3만엔(약 27만원)이란 적지 않은 가격에도 숙박객은 넘쳐났다. 주민들이 주도하는 마을 체험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일자리가 생기니 젊은 인재가 마을로 유입됐다. 마을엔 새로운 벤처 기업 5곳이 둥지를 틀었다. 

“지자체는 거들 뿐”…지역 주민이 관광 살린다 [지방 소생 보고서④]
충북 충주시 긴들마을에서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국내 인기 관광지 따라하기 “고질적 문제”


전문가들은 일본 관광 성공의 핵심을 지자체가 아닌 주민 참여에서 찾았다. 오랜 기간 지역 관광 개발 연구에 힘써온 이정섭 관광개발학 박사는 “일본은 다양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소재를 다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다”라며 “이 과정에서 행정기관보다 주민 참여 역할이 더 컸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이 관광과 지역을 통합적으로 본 것이 주효했다. 이 박사는 “일본은 행정기관이 지원을 맡고, 주민이 사업을 주도하는 체계로 변화했다”며 “한국도 주민참여형 사업 등을 통해 이러한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매우 늦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반대로 한국은 지역 관광 개발을 행정기관 주도로 진행하는 점이 문제다. 행정기관의 특성상 투자 대비 빠른 효과를 기대하는 사업, 눈에 잘 보이는 사업 등을 중심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타 지역에서 성공을 거둔 사업을 그대로 가져와 비슷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된다. 국내 지방 관광지에서 지역 특색을 찾기 힘든 이유다.

지자체 개발 연구에 참여해 온 김정훈(38) 위드리서치 조사연구위원은 “출렁다리는 물론, 메타버스·드론 등 관광 아이템 붐이 일 때 해당 아이템을 지역 개발 소재로 내면 (지자체) 호응이 좋다”며 “지자체는 예산 등의 이유로 중앙 및 관계 부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른 지자체에서 이미 많이 만들었다 해도, 이미 효과가 입증된 아이템을 놓기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광업계 관계자 배모(31)씨도 “공적인 부분이 많이 투입되면 그만큼 공직자의 요구사항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행정 영역에 있는 지자체들이 민간 영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시설을 개발해 경쟁력을 얻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는 “과거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했던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은 신세계가 인수한 이후 별마당 도서관 등을 만들면서 가라앉았던 상권이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지자체는 거들 뿐”…지역 주민이 관광 살린다 [지방 소생 보고서④]
충북 충주시 긴들마을허브센터에 있는 100년된 한옥 고택 숙소. 마을을 찾은 관광객을 위해 내포긴들영농조합 대표가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집을 숙소로 꾸몄다. 사진=임지혜 기자

전문가 “시설 개발보다 인구 정착이 우선”


지방에서 관광지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관광객이 해당 지역에 방문하고, 관광 콘텐츠에 반해 하루 더 머문다 해도 지역 숙박시설, 부대시설에서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교 겸임교수는 “지역은 관광지에 대해 시설 개발보다 사람을 키우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며 “대도시 인구가 지방에 정착할 수 있게 하는 정책, 지방 정주인구 2세들이 계속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해녀의 연극을 보며 식사를 즐기는 제주의 극장 식당,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는 음식을 재해석해 판매하는 부산 영도 식당을 지역 특색을 잘 살린 사례로 언급했다. 그는 “지역 특색을 담은 로컬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방은 숙박, 교통 등 관광객을 수용하기 힘들어 가고 싶어도 다시 못 가는 경우도 있다”며 관광객이 더 긴 시간 체류할 수 있는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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