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 도서지역 응급상황 손 쓸 방법 없다 [섬마을 의료 고립②]

인천 섬~병원까지 응급헬기 평균 이송시간 94분
기상상황 악화 시 배·헬기 못 떠…‘골든타임’ 취약
“응급 발생 시 취할 수 있는 조치 한정돼 마음 졸여”
공보의 운영·방문 무료진료 등 한계 “공공의료 확대해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섬을 갖고 있단 사실을 아시나요? 인천만 하더라도 40개의 유인도와 128개의 무인도가 있습니다. 인천 섬마을의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평균 31%로, 인천 평균(15%)의 2배를 웃돕니다. 하지만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를 제외하면 병원이라곤 인천의료원이 운영하는 백령병원 1곳뿐입니다. 아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진료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병이 커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지리적 특성 등으로 인해 건강관리가 취약한 도서지역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또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환자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 도서지역 응급상황 손 쓸 방법 없다 [섬마을 의료 고립②]
6일 인천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의 한 어르신이 무료진료를 나온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마을회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91㎞, 94분. 인천시 관내 섬 지역에서 응급의료헬기가 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하는 데 평균적으로 걸리는 거리와 시간이다.

도서 지역은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병원 가기가 힘들고 건강관리에 취약하다. 무엇보다 위급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다. 기상 상황이 좋지 못하면 꼼짝없이 섬에 갇혀 있어야 한다. 도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도만이 전부였다.” 지난 6일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위치한 승봉도에서 기자와 만난 김정숙 승봉보건진료소장은 지난해 겪은 응급상황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소장은 승봉도의 유일한 의료인이다. 종합병원 등에서 30년간 일한 베테랑 간호사인 그는 7년째 120여명의 주민을 홀로 돌보고 있다. 주민이 아프면 치료하고, 약을 처방한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건강을 살펴준다. 마을 주민들에게 김 소장은 의사이자, 약사이자, 상담사다. 그리고 영웅이다.

하지만 영웅도 생사를 오가는 응급환자 앞에선 고민이 깊어진다. 지난해 7살 아이가 집 다락방에서 추락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진료소를 찾았다. 안개가 짙게 끼고 바람도 거세 배도, 헬기도 못 뜨는 날이었다. 119구급대와 해양경찰에 지원 요청을 해놨지만, 아이의 생사가 달린 상황이라 한 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해경이 출동한다는 연락이 왔다. 김 소장은 항구까지 이동하는 트럭 안에서 쉼 없이 심폐소생술(CPR)을 했다. 아이가 해경에게 안긴 이후에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항구를 떠나는 해경 보트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이는 그날 저녁 의식을 회복했다. 

김 소장은 “아찔했다. 당시 아이가 잘못될까봐 기도를 하면서 CPR을 했다. 응급상황이 생길 때마다 십년감수하게 된다”라며 “응급환자가 생긴 경우 날씨가 안 좋으면 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취할 수 있는 조치도 한정된다. 마음을 졸이며 산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한 번은 몸살이 났다며 주민이 찾아왔는데, 살펴보니 급성 맹장염 같았다. 급히 닥터헬기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수술한 의사로부터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라고 했다.

도서 지역의 열악한 보건의료 환경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정부는 매년 8월8일을 ‘섬의 날’로 지정하는 등 도서 지역 개발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보건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지난 2019년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인천 지역 유인도 65.7%(23개)가 있는 옹진군의 응급환자 헬기 이송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섬 주민의 노령화 지수가 154.9로 평균(100.1)을 크게 상회한다. 

그러나 병·의원은 인구 1000명당 0.29개로 평균 0.92개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의료장비를 완비하고 전문의가 탑승하는 닥터헬기는 이송 소요시간이 긴 옹진군의 응급의료에 적합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기상상황이 안 좋거나 일몰 후엔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섬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섬보의)가 있지만 도서 지역 의료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공보의 1718명 가운데 섬보의는 5.4%인 93명에 불과하다.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지도 않는다. 보통 전체 복무 기간 3년 중 1년을 섬에서 보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주민들의 불편은 늘어간다. 섬에서 산 지 10년 된 주옥섬(72) 씨는 “몇 년 전 심장 수술을 받은 남편이 멍해지는 횟수가 잦다가 어느 날 쓰러져 해경선을 타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라면서 “그날 기상상황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자칫 변을 당할 뻔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 씨는 “육지 같았으면 병원에 바로 갈 수 있을 텐데 섬은 그러지 못해 응급상황이 생길 때마다 조마조마하다”라고 덧붙였다.

도서 지역과 도시 간 보건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의료진이 섬에 찾아오는 무료진료나 한 달에 한 번씩 섬을 순회하면서 진료하는 병원선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 역시 궁극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있다.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은 13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산간 지방이 많은 북유럽 국가들은 거점 공공병원을 세워 많은 의료 인력을 확보해 순회 진료를 돈다”라며 “도서 지역 의료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나 정책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섬처럼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는 건 공공병원의 역할이다. 인천의료원 분원 설립이나 1차 의료 의사 양성 등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라며 “섬에서 장기간 근무하게 하는 대신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보건진료소 근무 인력들의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해 업무의 폭을 넓히고 이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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