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천천히 함께②]

경계선 지능인, 복지 사각지대 놓여…“한 반 2~3명”
서울시, 지자체 최초 평생교육 지원센터 운영
유니클로·아이들과미래재단, 느린 학습 아동 캠페인 
전문가들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천천히 함께②]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안세진 기자

우리 주변엔 조금 느린 사람들이 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어 교육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선 지능인’이다. 전문가들은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리는 이 경계선 지능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바탕으로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적합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정상과 장애 중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교육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통상 IQ가 71에서 84사이면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본다. 이들은 정상 범주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릴 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린다.

복지 사각지대 놓인 ‘느린 학습자’


국회입법조사처의 '이슈와 논점’에 게재된 ‘경계선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은 IQ 정규분포도에 따라 전체 인구의 약 13.6%를 차지한다. 이는 우리나라 총 인구를 고려하면 약 699만명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의 경우 한 반에 2~3명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 많은 이들이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발생한 교육격차와 아이들의 사회성 결핍은 느린 학습 아동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나마 있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제도도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관련 법령을 살펴보면 ‘초중등교육법’에 성격 장애가 있거나 지적 기능이 떨어져 학습에 제약을 받지만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않는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 정책을 마련하라는 대목이 있다. 또 ‘아동복지법’에서는 지적능력이 IQ 71~84로 자립능력이 부족한 경우 위탁가정이나 각종 아동복지시설의 보호기간 추가연장 대상으로 규정한다.

김병기 아이들과미래재단 본부장은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지원을 학생으로 한정하여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넓게 보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며 “현재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정부의 제도나 지자체의 조례는 대부분 학령기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학습 관련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서지원·사회성지원·직무역량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천천히 함께②]
사진=안세진 기자

서울시 시작으로 관련 움직임 ‘속속’

조금 느리게나마 느린 학습자를 위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개선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 대상으로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관해 운영 중이다. 설립 초기 낮은 사회적 인지도와 홍보 기간의 제한 등으로 117명의 회원 수로 시작된 센터는 올해 7월 기준 약 300여명의 경계선지능인이 회원으로 등록돼 지원을 받고 있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20년 10월 서울특별시의회가 전국 최초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조례를 제정한 이후 현재까지 42개의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현재 국회에서도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교봉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 센터장은 “경계선 지능인에게는 잦은 실패에 따른 무너진 자존감과 주변의 거부와 놀림에 따른 정서적 결핍, 함께해줄 친구의 부재에 따른 외로움과 관계 맺기 등의 어려움이 있다”며 “센터에서는 이들을 불러 모으고 놀거리와 배울 거리를 제공하고 친구를 맺게 해 작은 것에서부터 성취감을 갖게 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에 나아갈 수 있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도움을 주고 잠재 역량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와 민간기업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3월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손을 잡았다. 유니클로는 ‘천천히 함께’ 캠페인을 통해 느린 학습 아동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1:1 맞춤형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캠페인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유니클로는 교육 지원 사업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아이들과미래재단과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천천히 함께②]
사진=안세진 기자

양육자와 시민들이 가져야할 태도는?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아이 부모를 포함한 시민 의식이다. 전문가들은 양육자의 경우 본인의 아이가 느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기 아이들과미래재단 본부장은 “양육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느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경계선 지능 진단을 받으면 ‘부정’ 단계를 거쳐 ‘잘못됨 극복’(IQ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데 IQ는 높아지지 않는다”며 “아이 상태를 인정해야 긍정적 수용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일반 시민의 경우 키오스크 앞 어르신들을 기다려주거나 도와주는 것처럼 경계선 지능인들에게도 이와 같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느린 아이를 동정의 대상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경계선 지능은 신체장애처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 배려가 어렵다. 느린 사람을 기다려주듯 이들도 그렇게 배려하면 된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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