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갸우뚱, 나중엔 확신’… 버추얼 휴먼에 빠진 청년들 [가상인간에 진심①]

‘처음엔 갸우뚱, 나중엔 확신’… 버추얼 휴먼에 빠진 청년들 [가상인간에 진심①]
지난해 전 세계 유튜브 수퍼챗 수익 순위 3위를 기록한 버튜버 복스 아쿠마(Vox Akuma) 유튜브 캡처  

유튜브 슈퍼챗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일까. 유튜브 슈퍼챗 순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슈퍼챗 순위 20위 안에 11명이 버튜버(버추얼 유튜버)였다. 업계에선 현재 활동 중인 전 세계 버튜버만 1만6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외국에서만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다. 2021년 7월 신한 라이프 단독 모델로 등장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는 최근 SNS 팔로워 15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3월 공개된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의 데뷔곡 ‘기다릴게’ 뮤직비디오는 약 3개월 만에 조회수 377만을 넘었다. 이미 우린 가상 인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버추얼 휴먼은 여전히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존재다. 하지만 일부 청년들에겐 익숙한 문화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라이브 방송과 SNS로 소통하는 모습은 여느 연예인과 다를 바 없다. 가상 유튜버와 아이돌이 어떻게 청년들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는지 들여다봤다.

생애 첫 덕질이 버추얼 아이돌일 줄이야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를 알게 된 후 A씨의 삶은 달라졌다. 이전엔 큰 관심이 없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플레이브를 처음 봤을 땐 그래픽 퀄리티가 좋다고 감탄한 정도였다. 일러스트 느낌의 기존 버튜버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어느 날 새벽, 우연히 플레이브가 출연한 MBC ‘쇼! 음악중심’ 영상을 보고 ‘입덕’하고 말았다. TV에 출연한 플레이브가 기존 아이돌 그룹과 똑같이 느껴졌다. 영상을 찾아보다가 그들의 개그 코드에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A씨는 일주일 동안 6개월 치 영상을 정주행했다. 갸우뚱하던 고개는 서서히 확신과 응원의 끄덕임으로 바뀌었다. 재미있는 버추얼 아이돌인 줄 알았더니, 아이돌로서 능력도 좋았다. 가짜라고 헐뜯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가짜 외면 덕분에 본질이 보였다. 아직 기술이 불안정해 렉이 걸리기도 하지만, 기술의 오류에 대처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일부 팬들은 오류가 나지 않으면 서운해할 정도다. 선입견을 벗어나니 새로운 문화가 열렸다.

4년차, 난 이제 당당한 버튜버 팬

김모(22‧남‧학생)씨는 일본 버튜버 홀로라이브의 팬이다. 평소 일본 애니메이션과 인터넷 방송을 즐겨봤기에 버튜버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하던 애니메이션과 인터넷 방송을 한번에 충족시켜줬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함께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요즘 김씨는 하루 2~3시간을 버튜버와 함께한다.

버추얼 휴먼에 빠진 건 김씨만이 아니다. 많은 청년이 버추얼 휴먼 굿즈를 사기 위해 콜라보 카페에 오픈런을 하고, 지하철 광고 촬영을 위해 전국을 순회한다. 지난해 7월 서울 애니플러스 합정과 홀로라이브 en이 협업한 카페에는 1000여명이 몰렸다. 버튜버의 인기에 이달 서울 합정과 부산 서면, 대전 중앙로, 광주 충장로 등에 협업 카페를 개장했다. 지난 3월엔 서울 왕십리역과 부산 서면, 양주역에는 버추얼 아이돌인 이세계 아이돌 멤버 릴파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전시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광고 인증샷을 남긴 어느 팬은 “릴파를 만날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며 “광고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방방 뛰고 싶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처음엔 갸우뚱, 나중엔 확신’… 버추얼 휴먼에 빠진 청년들 [가상인간에 진심①]
2021년 신한라이프 광고를 통해 데뷔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 신한라이프 유튜브 캡처.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것 같아


이모(26‧여‧직장인)씨는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MBC ‘쇼! 음악중심’ 출연 무대를 보고 눈을 비볐다. TV에서 가상 인간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보는 것도 신기한데 인기도 많다니 믿기 어려웠다. 가상 인간이면 누구인지 본 모습을 모른다는 얘기였다. 캐릭터만 보고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상 인간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진짜 사람이 아닌 가짜 모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조모(24‧여‧직장인)씨는 버추얼 휴먼을 ‘로봇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사람이 아닌 버추얼 아이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버추얼 휴먼의 유튜브 영상엔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의 비판적인 댓글이 다수 달린다. 한 버추얼 아이돌 영상에는 “오글거린다”, “이런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어지럽다”, “팬들도 3D냐”, “이해할 수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아직 숨어있는 가상 인간 팬들

지난 12일 경기 안양시 한 중학교 점심시간에는 버추얼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교내 방송에 플레이브의 노래를 신청한 것이다. 신청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해당 중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4‧여)양은 친구들이 버추얼 아이돌의 존재를 대부분 안다고 했다. 부끄러운지 안다고 나서거나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누진 않지만, 누구인지는 다들 아는 분위기다. 좋아하는 아이돌과 유튜버 얘기를 나누고 공유하는 것과는 다르다. 버추얼 아이돌이나 버튜버는 아직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해 나서서 말하진 않는 분위기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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