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납 대기만 83명, 병원서 탈출하고 싶었다” [놀이터통신]

반복되는 병원 진료대란 답 없나
전염병 유행 때마다 아픈 아이도, 부모도, 의료진도 고생

“수납 대기만 83명, 병원서 탈출하고 싶었다” [놀이터통신]
지난 16일 오전 9시 경기 광명시 한 소아과의 대기 인원은 30명이 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기 인원이 소폭 줄었지만 대기 20명 이상을 유지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힘들게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예약에 성공했어. 예약한 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진료를 봤지. 보니까 환자가 너무 많아서 병원 직원들은 점심밥도 못 먹더라고. 진료 마치고 수납 번호표를 뽑았더니 83명이 대기 중이더라. 애는 집에 가자고 징징거리는데, 수납이고 나발이고 도망가버리고 싶더라니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감기 기승’ ‘독감 유행’ ‘수족구병 환자 증가’ 등 뉴스. 이어 쏟아진 ‘소아과 오픈런’ ‘진료대란’ 기사는 곧 다가올 미래를 알리는 예고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2일 어린이집에서 아이 열이 39도라는 연락을 받았다.

자주 가던 A 이비인후과를 예약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었다. 당일 예약은 불가했다. 2~3일 뒤 진료 일정도 마감이었다. 고민하는 사이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은 날 오후 3시30분 A 이비인후과에 아픈 조카를 데리고 현장 접수를 하러 갔더니 이미 오늘 진료 접수는 마감이란다. 다시 앱을 열고 그나마 대기가 길지 않은 소아과를 찾아냈다.


병원 접수 오픈 시간을 앞둔 지난 15일 오전 9시30분, 병원 예약 앱을 켰다. 예약 오픈 3분 만에 30여명이 접수에 성공했다. 현장 접수까지 감안하면 더 많을 거란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회사에는 ‘아이가 아파서 오전에 소아과 좀 다녀오겠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전장을 나가듯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안은 다양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이마에 해열패치를 붙이고 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울음소리, 아빠 다리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 부모가 아이 손에 쥐여준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영상 소리 등. 앞으로 대기 29명 남았다. 답답한 마음에 최근 아이가 아파 먼저 고생한 친구에게 연락해봤다. “한동안 접수부터 수납까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수납 대기만 83명, 병원서 탈출하고 싶었다” [놀이터통신]
경기도 한 아동병원.   사진=임지혜 기자

“엄마, 저 아기는 왜 저렇게 울어”

아이 질문에 깜짝 놀랐다. 옆자리 아기 엄마가 우는 아이를 달래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우리 눈치를 보는 듯해 민망하고 미안했다. 아픈 몸으로 1시간 넘게 진료를 기다리는 아기가 힘든 게 당연했다. 아기를 달래려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아이 엄마도 얼마나 힘들까. “아기도 아프니까 우는 거야. 너도 아기 땐 저렇게 울었어”라며 아기 엄마에게 힘내라고 했다. 하지만 힘을 내기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기들의 울음은 더 길게 이어졌다. 진료 대기 순번은 제자리였다.

부모, 아이, 의료진 모두가 지옥이다. 진료 대란은 2~3개월마다 겪는 행사가 됐다. 코로나 19 방역 지침 완화 이후 대면·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전염성 질환도 활개 쳤다.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은 왜 전염병 유행마저 잘 타는지. 부모들도 ‘곧 내 차례’라는 걸 잘 안다.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또는 학원에서 아이의 친구들이 하나, 둘 결석하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급한 업무부터 처리하기 시작한다. 병원 오픈런을 해도 기본 1~2시간 대기는 기본. 오전 시간을 버려야 하기에 일하는 부모들은 눈치가 보인다.

‘최근 수족구병 환자가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워킹맘 이모(33)씨는 어린이집에서 보낸 안내문을 받고 ‘일을 빼야 하는 순간’, 즉 병원에 가게 될 날을 대비했다. 이틀 뒤 이씨 자녀는 수족구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한동안 가지 못했다. 이씨는 미리 회사 업무 일부를 끝내거나 가정에서 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둔 덕분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다.

“수납 대기만 83명, 병원서 탈출하고 싶었다” [놀이터통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을 방문,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연합뉴스

정부도 손 놓고 있던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필수의료 지원 대책과 소아의료체계를 확대하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현행 8곳에서 12곳으로,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의 경우 현행 8곳에서 14곳으로 각각 늘린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부모들이 밤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을 막고 신속 진료를 하겠다며 ‘야간 소아의료체계’를 구축한다고 했다.

달라졌을까. 결국 병원 오픈런이다. 여전히 육아·지역카페에선 열이 오르는 아이를 데리고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묻는 게시물이 매일 밤 쏟아진다. 어린이날 연휴였던 지난 6일 고열이 있는 5세 아이가 구급차를 타고 서울 시내 병원을 전전하다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반복되는 진료 대란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선 “애 낳으라는 국가가 맞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지난 3월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 쿠키뉴스 주관 ‘저출생 극복을 위한 소아 필수 의료체계 강화의 필요성’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패널로 참석해 들은 조병욱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 교수의 말을 되새겨본다.

“정부의 응급의료 기본계획으로 소아과 진료 대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요? 아니요. 낮은 수가(진료비), 강력한 인력구조 개편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거예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수납 대기만 83명, 병원서 탈출하고 싶었다” [놀이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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