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야 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아직, 반지하①]

침수에 집 잠겨…아이들과 몸만 빠져나와
전세자금 지원금 5000만원…비슷한 크기 지상층 2억 넘어
반지하 주민들, 한시적 바우처 한계 지적


사회 위계는 건물에도 있다. 돈이 이를 구분 짓는다. 지난여름, 반지하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건물의 위계가 생사를 갈랐다.
정부는 반지하를 비정상거처로 규정하고, 그들을 땅 위로 올리는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그곳엔 여전히 사람이 산다. 나가지 못하는 사람과 빈자리를 채운 사람. 예고된 재해 앞에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 편의 기사에 담았다. [편집자주]

도망쳐야 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아직, 반지하①]
김씨가 비닐을 씌운 창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의 집 창문은 침수 당시 부식돼 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사진=차종관 기자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여름이 오기 전에 이사 가야 하는데….”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김모(40)씨는 두 손으로 마른 얼굴을 연거푸 비볐다. 59.5㎡(18평) 남짓 크기의 반지하. 현관에 들어서자 웅웅거리는 제습기 소음이 귀를 때렸다. 이곳은 김씨와 그의 아들(8), 딸(6)의 유일한 안식처다.

김씨는 악몽 같았던 여름밤을 기억한다. 지난해 8월8일 오후 10시, 신림동 일대는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렸다. 115년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우가 쏟아졌다. 

도망쳐야 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아직, 반지하①]
김씨의 반지하 집 화장실. 지난해 폭우 당시 변기와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했다.   사진=차종관 기자

지반이 낮은 반지하 특성 탓에 수압 차이가 생겨 물이 역류했다.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에서 물이 솟구치더니 금방 여기까지 찼어요.” 그의 손끝이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당시 김씨는 두 아이와 함께 집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지금도 비만 오면 책가방에 휴대전화를 넣어놔요. 귀중품을 챙긴 가방만 들고 바로 집에서 나올 수 있도록 말이에요.” 김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침수된 집을 복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청소하는 데만 2주가 걸렸어요. 군인들이 와서 망가진 가구들 다 버려줬죠. 지인들이 10만원, 20만원씩 모아준 돈이랑 가지고 있던 돈을 합쳐 세간살이를 다시 샀어요.” 김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피해 복구에 든 금액은 800만원 정도다. 가전과 가구, 벽지와 장판 등 물에 젖은 모든 것을 바꿨지만 지금도 집안 곳곳에는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망쳐야 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아직, 반지하①]
김씨가 반지하 거실 바닥의 장판을 들어 올리는 모습. 장판에 물이 스며들어 곰팡이가 피었다.   사진=차종관 기자

“바닥 보면 파란색 점 보이죠? 이게 다 곰팡이예요. 지금도 시멘트 사이 구멍으로 물이 계속 올라와요.” 김씨가 들어 올린 장판이 축축했다. 안방 창문은 현재 비닐로 막혀있다. 침수로 창문 틈이 부식돼서다. 그는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환기를 포기했다. 집안 곳곳에는 공기청정기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올여름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냐고 물었다. “화장실 앞에 앉아 하수구를 주시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어요. 거실 창문에 물가림막이 설치돼 있기는 하죠. 하지만 집 안에서 물이 역류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김씨가 답했다. 그는 간절하게 지상으로의 이주를 바라고 있다.

이사갈 집을 찾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김씨는 건축업 관련 시공일을 4년간 해왔다. 지난해부터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일감이 줄었다. 시공일 특성상 지방으로의 출장이 잦다. 두 아이를 혼자 양육하는 그로서는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는 행정복지센터에 긴급복지신청을 해 매달 13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이런 복지지원마저 3개월 후면 끊긴다. “월세와 관리비만 해도 한 달에 80~90만원은 나가요. 여기에 애들 먹는 거랑 어린이집, 병원비까지 하면….” 김씨가 말끝을 흐렸다. 

도망쳐야 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아직, 반지하①]
신림동 일대의 빌라. 지난해 8월8일, 이곳의 반지하는 모두 침수 피해를 입었다.   사진=차종관 기자


김씨가 사는 반지하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다. 아이 둘을 양육하는 김씨가 이사를 간다면 최소 두 개의 방이 있는 지상층이 필요하다.

김씨와 같은 반지하 침수피해 가구의 이주를 돕기 위해 주택도시기금에서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전세자금’을 통해 민간임대는 보증금 50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씨가 보증금 지원을 최대로 받아도 지상층 이주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가 현재 가진 보증금 1000만원을 합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6000만원에 그친다. 김씨 집 반경 300m 이내에서 방 두 개짜리 지상층 매물을 찾아봤다. 총 68개의 매물 중 김씨 집과 비슷한 넓이인 곳의 전세가는 2억8000만원이다.

서울시는 반지하 침수피해 가구를 대상으로 한 월세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반지하 특정바우처’는 2년간 월 20만원의 월세를 지원한다. 전세가 2억8000만원짜리 집을 보증금 6000만원의 월세로 전환해봤다. 이 경우 매달 88만원(전월세전환율 4.8% 적용 시)을 내야 한다. 김씨는 지원금 20만원을 받아도 매달 68만원을 내야한다. 고정 수입이 없는 김씨에게 50만원이 넘는 금액은 부담이다. 지원이 끝나는 2년 뒤 불어날 월세 역시 김씨의 발목을 잡는다.


도망쳐야 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아직, 반지하①]
김씨 집 인근 반지하에 사는 정인태(58)씨가 생각에 잠겨있다. 그는 반지하 특정바우처 지원 대상이지만 지상층 이주를 포기했다. 정책의 최대 지원 기간이 2년에 그치기 때문이다.   사진=차종관 기자

김씨는 지난달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지원’을 신청해놓았다. 그렇지만 지원 대상에 적합한지, 얼마 정도의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이사를 간다면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저 행정복지센터에서 연락을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기상청은 이달부터 이른 더위가 찾아온다고 발표했다. 강수량도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씨의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여름은 다가오고 있다.

이예솔, 차종관, 유민지, 심하연, 유채리 수습기자 ysolzz6@kukinews.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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