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SM, 이수만의 빛과 그림자 [SM 지각변동③]

K팝 업계를 선도한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진통을 겪고 있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얼라인파트너스와 창업자 이수만의 갈등이 심화하면서다.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에 반발한 이수만은 하이브에 지분을 넘겨 후사를 도모하고 있다. 풍전등화에 놓인 SM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편집자 주>

격변의 SM, 이수만의 빛과 그림자 [SM 지각변동③]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에게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을까. 가수 이문세·유열과 함께 ‘마삼트리오’로 불리며 가수이자 MC로 활약하던 1980년대? 제작자로 변신해 가수 현진영과 그룹 H.O.T., 보아 등을 키워낸 1990년대?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을 배출하며 한류를 부흥시킨 2000년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전 총괄의 전성기가 저물어가는 모양새다. SM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일면서다. 구원투수로 나선 하이브조차 “이 전 총괄이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프로듀서로 복귀할 것이라는 내용은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때 ‘K팝 아버지’로 불렸던 이 전 총괄은 한국 가요계에 무엇을 남겼을까. 그 빛과 그림자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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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아이돌 그룹 H.O.T. SM엔터테인먼트

What’s good 아이돌 산업 토대를 만들다

SM의 아이돌 육성법이 구체화한 건 가수 현진영 이후부터다. 이 전 총괄은 당시 발굴한 현진영이 마약 논란을 일으키자 제작 방향을 틀었다. 자체 프로듀싱이 가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것보다 어린 연습생을 선발해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면서 SM은 연예인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를 넘어 연예인을 체계적으로 기획하는 회사로 진화했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게 그룹 H.O.T.다. 데뷔 당시 멤버들의 나이는 모두 10대였다. 개성 강한 멤버들이 선보이는 강렬한 음악은 10대들을 매료시켰다. 이수만은 대중 선호도 조사를 바탕으로 그룹 성격부터 멤버 조합을 구상했다. H.O.T.의 성공은 가요계를 제작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도화선이 됐다. 이후 유력 기획사로 연습생이 몰리면서 장기 연습생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룹 동방신기 전 멤버 김준수와 슈퍼주니어 이특·은혁, 소녀시대 유리는 연습생 생활만 6년을 거쳤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출중한 실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같은 스타 육성법은 불공정 계약 논란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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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 시절 그룹 동방신기. SM엔터테인먼트와 분쟁 과정에서 두 팀으로 쪼개졌다. SM엔터테인먼트

What’s bad 정산 싸움이 시작되다

SM이 시작한 연습생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기획사와 연습생 사이 갑을 관계를 만든다. 회사는 데뷔가 불분명한 연습생에게 트레이닝 명목의 투자를 이어간다. 연습생은 자신의 10대를 온전히 바친다. 연습생의 실력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투자 기간에 따라 좋아진다. 성과는 곧 정산 비용에 비례한다. 투자금 회수는 데뷔 이후부터다. 연습생 기간이 길수록 정산 시점은 멀어진다. 결국 연습생이 스타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는 회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 사이 형성된 불균형은 소송 전쟁으로 번진다. 2009년 소송을 거쳐 동방신기를 탈퇴한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SM과의 계약을 노예계약으로 규정하고 계약서 일부 조항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13년 동안의 계약기간과 사측에 지나치게 쏠린 수익 분배 비율, 탈퇴 시 연간 수입의 3배를 배상하라는 항목 등이 문제였다. 세 사람의 소송을 계기로 연예계에는 표준 전속 계약서가 나왔다. 현재 7년 계약이 새 기준으로 자리 잡았으나, 여전히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에는 소송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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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가수 보아. SM엔터테인먼트

What’s good
한류를 이끌다


때는 1998년. ‘K팝’은커녕 ‘한류’라는 단어도 낯설 때. 이 전 총괄은 그룹 H.O.T.를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음반을 내기 위해서다. 일찍부터 K팝의 아시아 진출 가능성을 내다본 그는 중국에서 H.O.T. 음반을 제작·발매했다. 한국 가수 최초의 중국 음반 발매 사례였다. K팝의 아시아 진출 가능성을 확인한 이 전 총괄은 2000년대 초중반 가수 보아와 그룹 동방신기를 일본에서 데뷔시켰다. 한국 가수를 현지화하는 일명 한류 1단계다. 결과는 대성공. 보아는 5년 만에 3000억원을 벌어들였다. 동방신기는 현지 팬 수백만 명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였다. 이 전 총괄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중국인 멤버 한경을 영입한 그룹 슈퍼주니어를 시작으로 K팝 아이돌 그룹에 외국인 멤버를 흡수해 현지 시장을 공략(한류 2단계)하고, K팝 제작시스템을 수출해 ‘한국인 없는 K팝 그룹’을 만들었다(한류 3단계). 이 전 총괄은 K팝 프로덕션도 세계화했다. 2009년 K팝 기획사 최초로 송 캠프(여러 작곡가가 모여 노래를 만드는 과정)를 도입해 전 세계 작곡가를 불러모았다. 이런 제작 방식이 K팝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K팝은 글로벌 창작자를 모으는 구심점 역할도 수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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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외관. KBS 뉴스 캡처

What’s bad 일감을 ‘몰빵’했다?

모든 SMP(SM 뮤직·퍼포먼스)는 이 전 총괄로 통한다. SM 영광의 시기를 가져온 이 법칙은 때로 SM의 약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전 총괄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4대 기획사 가운데 유일하게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진입곡을 배출하지 못한 점이 치명적이다. 글로벌 대중에게 호소하는 힘이 약하다는 방증이라서다. 사업 측면에선 내부 거래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 전 총괄이 지분 100%를 보유한 라이크기획과 SM 사이 프로듀싱 계약을 두고 일감을 몰아줬다는 지적이 일면서다. SM은 매년 라이크기획에 수백억원을 인세로 줬다. 회사가 적자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주들은 반발했다. 3대 주주였던 KB자산운용은 SM과 라이크기획이 합병하고 이 전 총괄이 SM 임원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으나 SM은 거부했다. 그러자 소액주주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들고 일어섰다. 지난해 9월부터 라이크기획과 SM의 계약을 문제 삼으며 소송까지 예고했다. 결국 라이크기획은 한 달 뒤 SM과 계약을 조기 종료했다. SM 경영진과 이 전 총괄 사이 불화도 이즈음 시작한 걸로 보인다. 13일 조병규 SM 사내변호사에 따르면 이 전 총괄은 내부거래 종료 및 지배구조 개선 등 얼라인 측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되, 이사회에 얼라인 추천인사를 포함하라는 제안은 거절했다. 그러나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가 이 전 총괄의 의사를 거스르고 얼라인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양측의 내분이 벌어졌다.

김예슬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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