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조?"…기자가 구매 포기한 결정적 이유 [새해 전기차 타볼까①]

"2035년이 되면 내연기관차 판매가 중지된다고 하는데. 자동차 기자면 무조건 전기차를 사나요?"

전기차를 구매하는 것은 여전히 시기상조일까? 종종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전기차를 지금 구매해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차량 구매를 앞두고 있었던 기자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 기자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차량을 타보았지만 정작 내 차는 없었기 때문에 생애 첫 차를 구매한다는 것은 설레면서도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자는 결국 전기차 구매를 포기했다. 일반 내연기관차를 살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기아 전시장 전경.

지자체별 '들쑥날쑥' 전기차 보조금…소비자 혼란

차량을 구매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산 설정이다. 최대 쓸 수 있는 금액을 제대로 설정해두지 않으면 차량 가격은 무한대로 올라간다. '모닝사러 갔다가 롤스로이스 보고 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에 기자는 예산을 최대 5000만원으로 설정하고, 차량 검색에 나섰다. 평소 관심 있었던 기아 니로와 예산을 훌쩍 넘어서지만 테슬라 모델 3도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다.


니로 하이브리드 차량가격 책자.
니로 전기차 차량가격 책자.

기아 니로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집 근처 기아 대리점을 찾았다. 니로 전기차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직원은 하이브리드 차량도 같이 비교해보라고 조언했고, 이에 두 차량에 대해 견적을 받아보기로 했다. 직원과 함께 어떤 옵션을 넣고 뺄 것인지 논의하고 최종 견적을 받아보니 하이브리드는 3421만원, 전기차는 5175만원이었다. 비슷한 옵션을 선택했을 때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가격 차이는 1800여만원에 달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직원에게 보조금이 적용된 최종 가격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직원은 "지금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다"라며 모호한 답변을 남겼다.

기자가 받아본 니로 하이브리드(왼쪽)과 전기차 견적.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에게 있어 전기차 보조금은 구매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별로 보조금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차를 구매하는 경우에도 금액이 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소진 속도도 달라 지역에 따라 보조금이 빨리 소진되면 보조금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된다.

지난해 전기차 국고보조금은 차량가격이 5500만원 미만인 경우 100%, 8500만원 미만은 50%, 8500만원 이상은 미지급됐다. 지자체 보조금은 서울시 200만원, 부산시 350만원, 대구·광주시 400만원, 대전시 500만원 등 지자체별로 금액과 규모가 상이하다.  

이를 니로 EV 에어 모델에 적용해보면 서울 거주자는 국고보조금 700만원에 서울시 지자체 보조금 200만원을 더해 총 9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같은 차종을 부산에서 구매하면 총 1050만원, 대전에서 구매하면 1200만원의 보조금 지원을 받는다. 전국 지자체 중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지역은 경북 울릉군으로, 지자체 보조금 1100만원에 국고보조금 700만원을 더하면 최대 1800만원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동일한 차라도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수백만원의 보조금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자가 구매를 망설인데에는 차량을 인수할 당시 보조금이 모두 소진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전기차 보조금 지급은 출고시점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면 다음해 상반기 공고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매년 전기차 국고 보조금 액수가 줄어들고 있다. 올해 보조금 기준은 지난해 700만원에서 680만원으로 줄어들고, 100% 지급 대상 구간은 5500만원에서 57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서울 시내 전기차 충전소 모습.
서울 시내 전기차 충전소 모습.

'집밥' 없으면 전기차는 먼 얘기

집 근처에 전기차 충전소가 있는냐 없느냐는 전기차 구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기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1998년 식으로 전기차 충전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근처 공용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가 있지만 2∼3분에 주유가 가능한 내연기관 차와 비교할 때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가 20∼30분 걸려 충전하는 일은 불편해보였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파란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가 종종 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어떻게 충전을 하고 있는지 알리가 만무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2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충전 인프라 동향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충전기 한 대당 전기차 대수는 2.6대로, 조사 대상국 30곳 가운데 가장 적다. 전기차는 늘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전기차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공동주택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사무소의 동의를 얻는 일이 필수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향후 전기차 충전소 설치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다. 관리소 직원은 "전기차가 충전하면 주차공간이 부족해진다"며 "특히 전기차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할꺼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집밥(집 앞에 있는 전기차 충전기)'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기자는 충전소 설치를 위해 입주자대표회의에 직접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다. 충전소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어 있는 공동주택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 동의서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전체 입주민 중 3분의 2 이상의 동의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정부는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비율을 신축은 총 주차대수의 5%, 기축은 주차대수의 약 2%를 신설하도록 강화했다. 아파트 100세대 이상,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영주차장은 50면 이상이면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단 기축 시설에 대해서는 2025년 1월 27일까지 유예기간을 뒀다. 어차피 설치해야하는 만큼 이를 앞당기자고 매번 회의때마다 읍소해야 했다. 

결국 몇 번의 입주자대표회의를 걸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소 확충을 위해 구매자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전기차 현실이었다.


글·사진 배성은 기자 seb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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