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없으면 돈도 없다 [시간빈곤연구소]

시간 없으면 돈도 없다 [시간빈곤연구소]
대다수의 한부모는 양육과 가사, 생업을 맡아 1인 3역을 수행한다. 이중 생업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만 시간 대비 임금은 낮은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하루 24시간, 8만6400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어떤 이들의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시간빈곤자 이야기다. 일주일 168시간 중 개인 관리와 가사, 보육 등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으면 시간빈곤자가 된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시간빈곤자 중 한부모에 주목했다. 생업과 양육, 가사를 모두 짊어진 한부모는 시간을 쪼개가며 1인 3역을 하고 있다. 찰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시간빈곤에 빠진 한부모의 목소리를 다섯 편의 기사에 담았다. [편집자주]
김희윤(47·여·가명)씨의 삶은 고단했다. 남편과 이혼 후 일을 쉬어본 적 없었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선 늘 눈치를 봤다.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었고, 반대로 시간을 벌려면 돈이 필요했다. “저는 너무 치열하게 살았어요. 아이 운동회나 졸업식에 간 적이 없을 정도로요. 급식당번 날에 학교에 갔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한번은 방과 후 돌봄교실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매를 들었어요. 연차를 쓸 수 없는 회사에 다녔거든요”

한부모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수백 가지다. 아이와 함께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입에 넣어줄 밥도 필요하다. 교육도 시켜야 한다. 가사와 육아에도 바쁜 한부모가 노동에 가장 긴 시간을 쓰는 이유는 결국 모든 것에 돈이 들기 때문이다.

시간빈곤에 빠진 한부모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의 77.7%는 취업한 상태지만, 대부분 근로소득과 고용안정성이 낮은 일자리였다. 1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임시·일용직 비율은 33.7%에 달했다. 취업한 27.9%가 일평균 10시간 이상 일하고, 절반에 못 미치는 44.4%만 주5일제 근무를 했다. 정해진 휴일이 없는 경우도 12%였다. 장시간 근로, 시간 대비 낮은 임금, 불투명한 직업전망 등이 지친 이들을 더욱 피로하게 만든다.


시간 없으면 돈도 없다 [시간빈곤연구소]
여성 한부모는 경제적 취약성으로 긴 시간 일하고도 충분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빈곤이 소득빈곤과 만나 이중빈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한부모 안수현(여·가명)씨는 항상 그 단어가 부러웠다. 비빌 언덕. 그에겐 기댈 나뭇가지조차 없었다. 아들이 군에 있을 때도 겨우 면회를 갔다. 그것도 딱 한 번. 휴가를 쓰면 그대로 잘릴 것 같았다. 회사의 미움을 살까 조심스러웠다. ‘엄마, 왜 우리 집에는 돈이 없어’라는 질문을 들은 이후 안씨는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저는 이제 시간이 있어도 불안해요. 그래서 말을 빨리 해요. 밥도 빨리 먹고요. 회사에서 시간이 조금만 남아도 뭔가를 하고 있어요. 20년을 불안하게 살아서 그런가”

오랜 시간 일하면 소득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식에는 적당한 보수가 주어진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한부모 특히 여성 한부모는 경제적 취약성으로 긴 시간 일하고도 충분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빈곤이 소득빈곤과 만나 이중빈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단 저소득층 한부모만의 일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에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큰 고통이다. 김주영(49·여)씨는 남편과 헤어지고 12년간 한부모로 지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딸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어렵게 서울 성동구에 필라테스 사업체를 차리고 일구는 동안에는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오전 8시에 나가 오후 11시까지 일했다. 결국 건강에 무리가 왔고 김씨는 모든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부모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 어려워요. 몸은 하난데 시간은 없으니까요.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열심히 달렸는데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너무 절망적이에요” 김씨는 흐느꼈다.

시간 없으면 돈도 없다 [시간빈곤연구소]
쿠키뉴스 자체 설문조사에 응한 한부모들은 대다수 비정규직 임금근로자,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답했다. 환경미화직, 식당 서비스직, 요양보호사 등이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박효상 기자   
한부모들의 이중빈곤은 직업 실태에서 확인된다. 쿠키뉴스는 서울한부모회 등의 도움을 받아 한부모 52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들 중 5명을 제외한 47명이 한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이 중 16명은 2~3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임금근로자·프리랜서는 30명이었다. 정규직 임금근로자는 14명에 그쳤다. 대부분 환경미화직, 식당 서비스직, 요양보호사 등이다. 월평균 소득은 비율은 100~200만원 미만이 50%, 100만원 미만이 23%를 차지했다. 200~250만원 미만은 17%에 그쳤다. 나머지 10%만이 25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다. 근로와 가사·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직업을 바꾼 경험이 있는 사람은 35명으로 이들 중 2명은 10번 이상 직종을 바꿨다고 말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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