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끌어 올려!” 청년들이 심은 ‘꺾이지 않는 마음’ [지금, Z세대]

“긍정 끌어 올려!” 청년들이 심은 ‘꺾이지 않는 마음’ [지금, Z세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문구가 적힌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권경원(왼쪽)과 조규성. 대한축구협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태극기 위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 영어로 ‘임파서블 이즈 낫싱’(IMPOSSIBLE IS NOTHING·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다), ‘네버 기브 업’(NEVER GIVE UP·포기하지 말라)이라고도 적었다. 대표팀을 이끈 손흥민은 지난 7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포르투갈 전을 앞두고 우리에게 과연 몇 %의 가능성이 있을까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선수들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투혼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승률 9.9%(스포츠 전문 통계회사 옵타)를 뚫고 16강전에 진출한 태극전사들의 투지는 청년들에게 이식됐다. 포르투갈 경기 이후 인스타그램엔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해시태그를 단 글이 1000건 넘게 쏟아졌다. 수험생부터 취미 운동가까지, 삶의 크고 작은 허들 앞에 선 청년들은 자신에게 ‘꺾이지 않는 마음’을 주문했다. 한 누리꾼이 포르투갈 경기를 앞두고 SNS에 적은 ‘알 빠임?’도 인기다. ‘맞서야 할 상대가 얼마나 강하던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뜻의 이 밈(Meme)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청년들의 의지를 불사르는 땔감이 됐다.

올겨울을 ‘중꺾마’와 ‘알 빠임’ 정신이 달궜다면, 지난여름엔 “끌어 올려”가 있었다. 흥 많기로 유명한 뮤지컬배우 김호영이 MBC ‘라디오스타’에서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한 말이다. 방송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자 청년들은 내면에서 힘과 용기를 끌어 올린다는 뜻으로 “끌어올려”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올해 ‘우영우 신드롬’을 이끈 배우 박은빈이 과거 배역을 위해 바이올린 연주를 연습하며 내뱉은 이 말도 청년들을 고취시켰다. 박은빈은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뭔가를) 해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면서 “내 노고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내일도 힘내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긍정 끌어 올려!” 청년들이 심은 ‘꺾이지 않는 마음’ [지금, Z세대]
배우 박은빈이 2년 전 “해내야죠”라고 말한 동영상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무엑터스 유튜브 캡처 

청년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된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청년들의 현실을 진단하는 신조어는 늘 암울했다. 20대 비정규직 평균 임금을 나타낸 ‘88만 원 세대’는 곧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로, ‘3포 세대’는 ‘5포 세대’(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도 포기한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로 치환됐다. 청년들 사이에선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의 ‘이생망’ 정서가 퍼졌다. ‘불공정’ ‘역차별’ 등 키워드가 말해주듯 사회 제도를 향한 불신도 함께 커졌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 반전된 건 “청년들이 비관적 키워드에 염증을 느껴 긍정과 낙관을 갈망하기 때문”(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이다. 김 평론가는 “청년들이 ‘객관적인 조건이 뒤처져도 마음만 꺾이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에서 실감해 ‘중꺾마’ 열풍이 일었다”면서 “실력으로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 정신 역시 공정을 향한 청년들의 열망을 충족시켰을 것”이라고 짚었다. ‘중꺾마’의 첫 주인공인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이머 ‘데프트’ 김혁규 선수도 극적인 여정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가 속한 DRX는 지난달 열린 롤드컵에서 초반 열세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김혁규를 인터뷰한 본지 문대찬 기자가 제목에 ‘꺾이지 않는 마음’을 쓰면서 이 단어는 언더독(상대적 약자)의 의지를 상징하는 표어로 떠올랐다.

다만 ‘중꺾마’ 열풍이 청년 개인의 ‘노오력’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중꺾마’는 현실에 지친 청년들을 위로하고 숨통 트여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그러나 청년들이 희망을 품기 어려울 만큼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이런 현실을 계속 직시하면서 불공정한 사회 제도를 하나하나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도 “오랜 시간 담론에서 배제됐던 젊은 세대가 밈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퍼뜨리며 가치관을 실현하는 경험을 쌓고 있다. 이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도록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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