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당뇨 증가 개인 탓?…“사회적 논의 시작을” [청년 식생활 빨간불③]

오늘은 맛있고 내일은 후회할 청년들의 식탁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2030 청년들은 무얼 먹고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라는 선입견이 청년들의 문제적 식탁을 방치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오늘의 입맛은 물론, 내일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식탁을 들여다봤다. 

비만·당뇨 증가 개인 탓?…“사회적 논의 시작을” [청년 식생활 빨간불③]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민음식학교에서 1인 가구 대상 ‘함께밥’ 수업이 진행됐다.   사진=박효상 기자

“요리 난이도가 어떻게 될까요?” “음… 양파 썰 줄 알면 충분합니다”

요리연구가 말에 참가자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서울시민음식학교에서 1인 가구 ’함께밥’ 수업이 열렸다. 서울시 식생활종합지원센터에서 주최한 식생활 교육 중 하나다.

이날 주제는 달걀. 대상은 2030 청년이다. 주말 이른 시간임에도 모두 10명이 모였다. 수업에서 만든 요리는 태국식 달걀 카레와 스카치 에그 두 가지다. 계란이 덜 익어 껍데기에 흰자가 묻어 나오고, 불 조절을 못해 팬에서는 검은 연기가 난다. 요리 초보의 기운이 곳곳에서 풍겼지만 참가자들은 즐거워 보였다. 요리를 마친 뒤에는 색색의 구운 야채와 고수를 얹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이도 있었다.

요리연구가는 비싼 식재료가 없이도 충분히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요리연구가는 “수업 주제로 주변에서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두부, 오징어, 돼지고기 같은 식재료를 주로 고른다”면서 “흔히 달걀 요리라고 하면 달걀 프라이나 계란찜만 생각한다. 사실은 할 수 있는 이색적인 요리가 무궁무진하다. 수강생들이 건강을 위해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습관을 들였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수업에서 만난 자취 3개월차 서울 서대문구 주민 문찬혁(29)씨는 “외식과 배달 음식에 질렸다. 집밥도 그립고 요리에 관심이 생겨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스카치 에그는 튀김이라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카레는 집에서 꼭 시도해 보려 한다. 기회가 된다면 수업을 또 듣고 싶다”고 말했다.

비만·당뇨 증가 개인 탓?…“사회적 논의 시작을” [청년 식생활 빨간불③]
수업 주제인 달걀을 가지고 만든 태국식 달걀 카레와 스카치 에그.   사진=박효상 기자

청년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716만6000가구로 전체 2144만8000가구 가운데 가장 많은 33.4%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 52만2000가구(7.9%)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29세 이하가 19.8%로 전체 1인 가구 중 가장 많았다. 

청년 1인 가구 식사는 다인 가구에 비해 부실하다. 지난 2020년 정복미 전남대 생활과학연구소 교수가 제 6, 7기 국민건강영양조사(2014~2016)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영양소 섭취가 다인가구에 비해 부족했다. 특히 식이섬유와 철 섭취량이 미달했다. 청년 1인 가구는 하루 2회 이상 외식하는 비율이 다인 기구 보다 높았다. 특히 남성 1인 가구는 외식의존율이 24.8%로 높은 편이었다. 

때문에 청년 1인 가구도 넓은 개념의 취약계층으로 보고, 이들에 특화된 식생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규교육과정에 식생활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교 5, 6학년 실과 교과, 중학교 기술가정 교과, 고등학교 가정과학 교과에서 올바른 식습관, 음식 만들기를 배운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교육이 중단된다.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층 대상 식생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일회성 체험에 그친다.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서울시는 청년을 대상으로 반찬, 새로운 요리를 배우는 수업을 진행하고 레시피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는 도내 청년 1인 가구(기숙사생, 자취생 등)를 대상으로 교육 영상과 실습 식재료 꾸러미를 1회 제공하는 비대면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박찬윤 수원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청년층은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높은 연령대다. 과도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방법의 식이요법(간헐적 단식, 저탄고지, 디톡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영양교육이 필요하지만 의무교육이 끝나면 방법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단순히 요리 배우기에 그치지 않고, 보건소와 협업해 영양학적 측면에 대한 교육도 함께 실시하는 등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보완이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비만·당뇨 증가 개인 탓?…“사회적 논의 시작을” [청년 식생활 빨간불③]
한 20대 청년이 일주일간 먹은 식사 중 일부. 외식, 배달 음식 섭취 증가가 나트륨 과잉, 더 나아가 당뇨·고혈압 환자 증가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1인 가구 청년 끼니만 문제가 아니다. 염분이 높은 배달, 외식 음식 섭취 증가로 최근 20~30대 젊은 층에서 당뇨와 고혈압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30대 당뇨병 유병률은 2배가 증가했다. 지난 2005년 20대는 0.5%, 30대는 1.2%였다. 2016~2018년에는 각각 1.0%, 2.4%로 집계됐다.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인 고혈압으로 진료 받은 2030세대 환자는 지난 2017년 19만5767명에서 지난해 25만2938명으로 29.2% 늘었다. 비만 환자도 늘었다. 2017년 병원에서 20~30대 비만으로 진단된 환자는 6340명이다. 지난해 1만 493명으로 65.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탕세, 먹방 가이드라인 등 제도적 해결책은 반대 여론에 막혀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당류가 들어간 음료를 제조, 가공, 수입하는 회사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 “설탕의 과다 섭취가 비만, 당뇨병 등의 주요 원인이며 건강한 식품 및 음료의 소비를 목표로 세금과 보조금 등의 재정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설탕세는 현재 노르웨이, 헝가리, 핀란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 ‘세원 확충이 진짜 목적’이라는 의구심이 높다.

비만·당뇨 증가 개인 탓?…“사회적 논의 시작을” [청년 식생활 빨간불③]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   보건복지부

먹방 가이드라인 제시도 흐지부지됐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통해 폭식 조장 미디어나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계획을 밝혔다. 가이드라인 제시는 규제와 다르다. 그럼에도 정부가 먹방을 규제하려 한다며 와전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먹방을 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 “시대 착오적”이라며 반대 의견이 130건 넘게 올라왔다.

청년층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는데, 이대로 두는 것이 최선일까.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포럼을 열고 오는 2050년을 당뇨병 환자 수 600만명을 넘는 시점으로 예상했지만 30년이 앞당겨졌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학계는 특히 MZ세대 당뇨병 유병률 증가에 주목하면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먹방을 언급했다.

문준성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대한당뇨병학회 총무이사)는 “먹방에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국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학계에서도 논의 중이다. 아직은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비만, 당뇨병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음주나 흡연 장면이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모자이크 처리 등 제약을 두는 것 처럼, 학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 미디어 소비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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