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불란 대응 위해 수평적 보고시스템으로 바꿔야” [쿠키인터뷰]

[인터뷰]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 ②

“일사불란 대응 위해 수평적 보고시스템으로 바꿔야” [쿠키인터뷰]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11일로 14일째. 국가가 정한 애도의 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참사를 둘러싼 원인규명, 책임자처벌, 사후대책 마련 등을 위한 시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쿠키뉴스는 앞서 기획보도 [또다시, 참사]를 통해 비극의 원인과 대응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지난 9일에는 안전정책분야 전문가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과의 화상인터뷰를 통해 이태원 참사 전반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재난안전 전문가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살펴주기를 부탁했다. 조 원장 인터뷰는 1~2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일사불란 대응 위해 수평적 보고시스템으로 바꿔야” [쿠키인터뷰]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 관계자들이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조성일 원장은 재난 발생 시 일사불란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보고체계 개편의 당위성을 언급했다.

연이은 대형재난 발생 후 “대통령한테 몇 시에 보고가 됐느냐. 행정안전부 장관한테 몇 시에 보고가 됐느냐. 경찰청한테 몇 시에 보고가 됐느냐. 그렇게 또 지시는 어떻게 내려왔느냐”가 항상 지적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간에 누군가가 블랭크(공백)이 생기면 원활하고 신속한 보고가 안 된다”며 “(보고체계상)개인이 재난에 대응을 못하는 상황이 있었을 때 그 조직 전체의 실패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도에 세월호 때 죽어가는 애들은 카톡으로 상황을 (가족이나 친구들과)공유를 했지만 그때도 행정안전부나 중앙재난대책본부는 전화통을 잡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재난 초기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공유를 해서 개인의 실패가 나타나지 않도록, 개인의 실패가 전체 시스템의 실패로 나타나지 않도록, 집단 지성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평적 공유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각 공공기관, 지자체 중앙정부 이런 데가 다 자기 위치에서 맞는 조사를 꾸준히 하고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를 객관적인 눈으로 봐야한다”며 “이런 훈련과 조직을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것을 낭비로 보거나 이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과거 방식으로만 대응을 하는 것은 어렵다”며 “매뉴얼이라는 것은 사실은 과거 사고를 기반으로 해서 만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새로 나타나는 위험에 대해서는 매뉴얼이 없으니까. ‘법이 없으니까, 나는 몰랐다’ 이렇게 재난을 대응하면 우리는 이런 사고들을 계속 반복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정부 자체에서 재난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하는 공식 루트를 만들어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일사불란 대응 위해 수평적 보고시스템으로 바꿔야” [쿠키인터뷰]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역할도 주문했다. 광역 및 기초 지자체가 새로운 재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와 함께 대책을 고민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것이다. 재난대비를 위한 조직운영과 예산운용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500명 이상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격 있는 훈련된 사람이 ‘crowd management’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관리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빌미가 된 핼러윈데이의 경우, 주최자 없어 관리책임을 물을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정부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주체가 없는 행사일수록 안전을 더 챙겼어야한다”며 “(관리책임 회피는)국민 개개인들이 알아서 하세요,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조 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은 정부가 위기 상황 어려울 때 우리를 보호해 주고 안전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으로 국가는 이를 기본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참사 이후 설익은 언행으로 비난받고 있는 정부 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장을 향해서는 “그 자리까지 갔다는 것은 기본 이상의 역량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인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데 왜 정부 책임자들이 그런 일을 종종 벌이느냐. 엘리트 정치, 엘리트 행정가들이 재난 시에 국민 앞에서 어떻게 소통해야 되는지에 대한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혀를 찼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의 이태원 참사 관련 질의시간 중 '웃기고 있네'라고 메모를 썼다가 비판받은 일을 콕 집어서 “국민들을 향해서 쓴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사적인 얘기였다’고 변명하는 게 오히려 ‘정부와 국민의 소통을 담당하는 홍보 수석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라고 보이는 것”라고 힐난했다.

그는 “서울시 같은 지자체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에서는 국민들하고의 소통 방법에서 기본 사항 중에 하나로 ‘법률에 의하면, 법규에 의하면, 관례에 따르면, 규정에 따르면’ 이런 소리는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상처를 입은 국민들을 보듬는 소리를 해야한다”고 전했다.

“일사불란 대응 위해 수평적 보고시스템으로 바꿔야” [쿠키인터뷰]
과자와 함께 놓여진 추모 메시지.   사진=임형택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에 인파가 몰린 곳에 가면 권투자세를 해 가슴 앞 공간을 확보하라는 조언에 대해서는 “한가한 소리”라고 비판했다.

이어 “군중밀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개인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가슴 앞 공간을 확보하다가 넘어진다 해도 위에 사람이 쌓이면 죽는다”고 예측했다.

또한 “팔을 들어 올리면서 가슴 앞 공간을 확보하면 자기 체적이 늘어난다”며 “이건 남을 죽이는 행위일 수도 있다. 서로 꽉 눌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다 팔을 올리면 그 중에 팔 못 올리는 사람이 일찍 죽는다”고 설익은 재난대응방식의 전파를 경계했다.

조 원장은 경찰의 적극적 개입으로 밀집 군중을 관리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훈련이 안 된 경찰들이 오히려 군중 사고를 촉발할 수도 있다”며 “제일 대표적인 게 최근에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사고 같은 것인데 최루탄을 써서 군중들을 자극하거나 이런 것들”이라고도 우려했다.

이어 “(관련 논문에 따르면) 500명 이상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격 있는 훈련된 사람이 ‘인파관리’(crowd management)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관리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조성일 원장은? =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서울시안전실장 등을 지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등 대형재난사고 현장을 경험했다. 공직생활을 마친 뒤 르네방재정책연구원을 설립한 국내 안전정책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명이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손대선 편집위원, 정리 민수미 기자 sds110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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