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어공주 이전에 이들이 있었다 [낫 유어 에리얼③]

편집자 주 : [낫 유어 에리얼]은 흑인 인어공주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쓴 ‘나의 에리얼이 아니다’(#NotMyAriel) 해시태그를 뒤집어 ‘너의 에리얼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쓴 제목입니다. 나의 에리얼은 백인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타당한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흑인 인어공주 이전에 이들이 있었다 [낫 유어 에리얼③]
영화 ‘인어공주’ 예고편. 디즈니 유튜브 캡처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인어공주를 연기하는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과 다양성 존중에 대한 호평이 양립하는 가운데, 이미 비슷한 폭풍을 겪은 이들이 있다. 배우의 인종과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 이른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촉발한 이번 사안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이에 앞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시도들은 어떻게 이어져왔을까. 과거 유사 사례를 되짚어봤다.

‘뤼팽’·‘브리저튼’·‘맥베스’, 백인을 흑인으로 바꾸다


원작 속 백인 캐릭터를 흑인으로 바꾸는 것에 앞장선 대표적인 예는 넷플릭스가 2020, 2021년 각각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과 ‘뤼팽’이다. ‘브리저튼’은 원작 소설 속 백인 캐릭터를 흑인으로 뒤틀었다. 헤이스팅스 공작과 왕비 역은 각각 흑인 배우 레지 장 페이지와 골다 로슈벨이 연기했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흑인 귀족·왕비가 나오는 모습에 반발도 있었으나 공개 4주 만에 8200만 유료 가구가 시청하며 흥행에 성공했다(넷플릭스 집계). 원작 소설을 쓴 줄리아 퀸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해 ‘브리저튼’이 현실 세계와 비슷해졌다. 대중에게 ‘세상이 이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다”면서 다인종 캐스팅에 만족해했다.

‘뤼팽’ 역시 프랑스 원작 소설 ‘아르센 뤼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백인이던 주인공을 세네갈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치환했다. 기존 ‘뤼팽’ 시리즈의 주인공을 마른 체형의 백인으로 캐스팅하던 것과 달리, 넷플릭스가 내세운 ‘뤼팽’은 거구의 흑인 배우 오마르 시가 맡았다. ‘뤼팽’ 역시 공개 4주 만에 7600만 유료 가구의 선택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애플tv+ 오리지널 영화 ‘맥베스의 비극’의 주인공 맥베스는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이 연기했다. 맥더프, 레이디 맥더프 역은 흑인 배우 코리 호킨스, 모지스 잉그럼이 각각 담당했다. 워싱턴은 공개 당시 미국 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양성을 특별한 것처럼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며 “하얗든 까맣든 파랗든 간에 재능과 자격이 있어 작품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미국 건국사를 다룬 뮤지컬 ‘해밀턴’ 측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역을 흑인 배우로 캐스팅해 반향을 일으켰다. 다양한 인종을 아우르기 위해 실존 인물을 다른 인종으로 바꿔 논란이 일었으나, 상연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관람하며 화제가 됐다.

흑인 인어공주 이전에 이들이 있었다 [낫 유어 에리얼③]
넷플릭스 ‘브리저튼’과 ‘뤼팽’, 영화 ‘듄’, 애플tv+ ‘맥베스의 비극’(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등 원작을 변주하며 흑인 배우를 기용하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넷플릭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애플tv+

‘시라노’·‘듄’·‘힘의 반지’, 관습에 반기 들다

관습을 깬 시도 역시 있다. 프랑스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토대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 ‘시라노’에는 주인공 시라노의 연적 크리스티앙 역으로 흑인 배우 캘빈 해리스 주니어가 출연했다. 그동안 뮤지컬 무대에서 백인 배우가 크리스티앙 역을 소화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화 ‘듄’의 챠니 역은 흑인 혼혈 배우 젠데이아 콜먼이 맡았다. 동명 원작 소설에는 인종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영상물로 만들어진 기존 작품들은 챠니 역으로 백인 배우를 기용해 왔다.

지난 2일 공개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이하 힘의 반지)는 엘프 요정 아론디르, 난쟁이 드워프 종족의 공주 디사 캐릭터에 흑인 배우를 배치했다. 원작자 J.R.R.돌킨이 엘프의 피부를 하얗거나 창백하다고 묘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디사 공주는 극 중 피부색에 대한 묘사가 없으나, 과거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선 백인 배우가 주로 도맡아왔다. ‘힘의 반지’는 공개 이후 일부 네티즌에게 과도한 ‘블랙 워싱’(인종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캐릭터를 흑인으로 설정하는 추세를 비꼬는 표현)이라는 비난과 함께 평점 테러를 받았다. 공개 직후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힘의 반지’의 평론가 평점은 84%, 관객 평점은 38%로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팅커벨·피노키오·백설공주… 디즈니의 파격은 계속

논란에도 디즈니는 다양한 인종을 아우르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는 ‘인어공주’의 할리 베일리 외에도 디즈니+ 실사 영화 ‘피노키오’에서 파란 요정 역으로 흑인 배우 신시아 에리보를 캐스팅했다. 마찬가지로 실사 영화 ‘피터팬’에서 흑인 배우 야라 샤히디가 요정 팅커벨을, ‘백설공주’에서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주인공 백설공주 역을 맡았다. 

원작 팬들의 반발이 거세지만 디즈니는 굳건하다. 앞서 디즈니 측은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으로 논란이 일자 “인어공주 원작자 안데르센은 덴마크인이다. 흑인 덴마크인이 있듯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할리 베일리는 ‘인어공주’ 촬영 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인어공주를 연기하는 건 많은 걸 시사한다. 모든 흑인 및 유색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싶다”면서 “어릴 때부터 이런 인어공주를 접했다면 세상을 보는 모두의 관점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설공주 역을 맡은 레이첼 지글러는 캐스팅 발표 후 비판이 나오자 SNS에 “나는 백설공주지만, 내 역할을 위해 내 피부를 표백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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